제주4·3희생자유족회, 일본 오사카 관음사 4·3 행불인 위령제 참가
행불인 위패 200여구 안장...유족 등 참가 첫 위령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반세기 넘게 구천을 떠돌며 고향도, 가족도 잃어버린 사람들. 제주4·3의 여파는 일본을 비껴가지 않았다. 제주4·3의 아픔은 곧 재일 제주인의 아픔이었기에, 그들의 4·3 60주년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김두연)가 재일 제주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19∼22일 일본 오사카를 찾았다.
유족회는 19일 오후 200여구의 위패가 모셔진 오사카 소재 관음사(주지 태현스님)에서 한줌의 흙조차 남기지 못한 행불인들을 위해 위령제를 조촐하게 봉행했다.
이날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함께 제주·일본의 4·3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관계자들, 일본 4·3유족회원들은 향불을 켜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혼백들의 억울한 죽음을 달랬다.
향불이 타들어갈 때마다 유족회 등 참석자들은 행방불명인들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지라도 원한을 풀어 편안하게 영면하기를 빌었다.
이날 4·3 60주년 관음사 위령제가 어느 때보다 뜻 깊게 다가온 사람이 있다. 일본 오사카4·3유족회 강실 회장(69)이 바로 그다. 강 회장은 오사카 관음사에 행불자들의 위패가 모셔질 수 있게 한 숨은 공로자다.
강 회장은  4·3 50주년이었던 1998년, 김윤수 심방(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장)의 집전으로 500여명의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첫 위령제를 올렸다.
강 회장은 "주변으로부터 "까불지 말라. 세상 바뀌면 또 얼먹잰?"이란 위협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4·3당시 크나큰 상처를  입은 관계로 친족도, 나라도,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엄포를 놓고는 했다"며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4·3으로 일본으로 와 행방불명이 됐거나, 이북으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소문했고, 행불인들의 위패를 이곳에 모시게 됐다며 이후 행불인 가족들이 참관하는 매달 1차례 위령제가 봉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어 행불인에 대한 명확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아직까지 일본 내 4·3 희생자 또는 행불인에 대한 숫자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빠른 시일 내에 이들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 원혼들의 억울함을 벗겨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몇 해 전부터 관음사 4·3 위령제를 집전해온 태현 스님은 "위령제는 처참하고 애통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기 위함이다"면서 "제주4·3은 돌아가신 영혼의 비극만이 아닌, 민족의 비극인 만큼 역사성이 후대에 바르게 인식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한편 김두연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이번 위령제는 60년 전, 고향을 떠난 이후 희생된 사람들, 최근에 돌아가신 희생자까지 위패가 모셔진 관음사에서 고향의 유족회가 위령제를 봉행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제민일보 공동으로 추진되고 있는 4·3 타임캡슐 사업과 관련, 김 회장은 관음사 4·3 행불인 위령제 내용을 포함, 하반기까지 4·3 관련 기록물을 수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제주4?3 위령제와 함께 내년부터는 문화사업으로 외연을 넓혀 후대에 제주4?3을 기억, 계승하는 작업으로 진행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현순실 기자 giggy@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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