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익렬 장군 유족들 도 초청 제주 방문

'역사는 어디까지나 정직하여야 되며 사실 그대로 충실히 기록되어야 후세 국민들이 그 역사를 참고하고 반성하고 배우게 될 것이다. 어느 특수 인물의 죄악을 은폐하거나 또는 영웅화 시키기 위한 창작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적(史賊)이다. 제주도 4·3사건의 역사는 재편집되어야 하며 재평가되어야 된다.

역사의 증인으로서 나는 4·3사건은 둘로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4·3사건 발생원인과 발생, 또 하나는 발생 후부터 토벌과 진압까지이다. 그 이유는 전자는 순수한 민중폭동이었으며 그 후자는 민중폭동이 공산폭동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전연 상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구별되어야 한다.

나는 전자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생존자 중의 유일한 증인이다. 4·3사건의 실상이 밝혀지더라도 나에게는 피해나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내가 경험한 사실을 기술한다. 사명감과 책임감에서…….'

- 김익렬 장군 유고록 '4·3의 진실' 중에서
 

   
 
  고 김익렬 장군 생전 모습  
 

제주주둔 제9연대장 재직 중 발생한 4·3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도민 희생을 막기 위해 헌신했던 고(故) 김익렬 장군의 유가족들이 26일 제주를 찾았다.

1947년 9월 제9연대 부연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었던 고 김익렬 장군. 도민들에게 그는 4·3 평화 해결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왜곡된 4·3진실을 바로 잡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의인으로 기억되고 평가되고 있다.

1948년 4·3이 발생하자 김익렬 장군은 미군정으로부터 4·3 진압작전에 참가하라는 명령에 '선(先) 선무 후(後) 토벌'원칙을 수립,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무장대 진영에 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내놓는 굳은 심지로 김달삼과 '4·28평화협상'을 체결했으며 5월5일 딘 군정장관이 주재한 최고 수뇌회의에서 평화해결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무부장 조병옥과 대립, 5월6일 제9연대장직에서 전격 해임된다.

해임 후에도 김익렬 장군의 의로운 행보는 그치지 않았다.

1970년대 4·3에 대한 미군정과 경찰의 실책이 은폐되고 4·3이 왜곡되는데 공분, 회고록을 집필, 4·3진실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4·3회고록은 유언에 따라 김 장군이 영면한 다음해인 1989년 본보 '4·3특별취재반'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현재 김익렬 장군의 친필 유고록은 4·3평화기념관  4관 '의로운 사람들'코너에 망원경, 장군 신분증 등 유품 10점과 함께 기증, 공개됐다.

제주도는 이처럼 4·3평화기념관에 김익렬 장군의 유고록 및 유품을 기증한데 따른 감사의 표시로 서울에 살고 있는 미망인 최재선(81), 장녀 김성례(58), 차남 김성권(54), 2녀 김성애(56), 3년 김성주(51)씨를 26일 제주로 초청했다.

이날 감사패를 전해받은 미망인 최재선씨는 "본인(고 김익렬 장군)의 뜻때로 4·3을 끝까지 막았으면 저희가 더 떳떳하고 좋았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제주도로부터)이런 대우를 받아 오히려 죄송하다"고 밝혀 주의를 숙연케했다.

   
 
  고 김익렬 장군의 친필 유고록.  
 
유고록 공개 이후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최씨는 "자식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특별한 탄압은 없었다"며 "공개해 달라는 영감의 유언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차남 김성권씨 역시 "보관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오히려 공개 이후 원고가 조금이라도 수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이는 등 고인만큼 의연한 모습으로 주변을 감동시켰다.

장녀 김성례씨는 "아버지는 항상 가정보다는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신 분이셨다"며 "어릴적부터 갈등하시는 모습, 아침이면  (유고록을)집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는데 의롭고 소신있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당시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했다.

또 이날 자리에서는 제주 재임 당시 부인 최씨가 출산 후 좁쌀·감자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힘들어하자 이를 보다 못한 군인들이 쌀을 가져왔으나 "군이 먹을 것을 가져오면 어떻하냐"며 다시 돌려보내는 등 소신있고 강직한 김익렬 장군의 품성을 드러내는 일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한편 김두연 4·3유족회장은 이날 감사패 전달 자리에서 김익렬 장군처럼 '의로운 사람들'을 찾는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박미라 기자 mrpark@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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