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다. 아침부터 바쁘다.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어떤 책을 읽어줄까. 어떤 활동을 할까. 행복한 고민들이다. 시골에 있는 병설유치원에 책 읽어 주러 나가는 아침, 우리 도서관 풍경이다. 차를 타고 중산간 도로로 들어서니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 푸른 잎사귀가 싱그럽다. 봄바람을 타고 있는 이파리들의 연한 몸짓에 유치원 아이들 모습이 겹쳐진다.

한두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활동은 벌써 4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번 갈 때마다 부산스럽고, 갈 때마다 두려운 것은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겠지만 새로운 책은 늘 처음이며 늘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고 있다. 함께 가는 자원봉사 선생님들도 봄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재잘대지만 속은 모두 긴장하고 있음이다.

이 아름다운 길로 나설 때 우리가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것은 재밌는 놀이도, 멋진 소품도 아니다. 가장 엄마다운 목소리, 가장 아빠다운 목소리로 읽어주는 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이들은 자극적인 영상 매체에 눈길을 주고, 화려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편안한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 아이들이 집중하여 귀 기울일 때 아이들이 집중하여 눈을 반짝일 때 책 속 이야기는 글자를 넘어 책을 넘어 아이들 마음속에 맛있는 음식이 되어 삼켜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가장 잘 읽어주고 가장 잘 듣는 것이 책읽기의 뿌리임을 나날이 깨닫고 있지만 요즘은 여러가지 면에서 조바심이 난다. 도서관에는 영어책을 찾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으며, 숙제인 독서기록장을 들고 와 책을 읽는 대신 수를 세어가며 기록하기에 바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주변 사람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흔히 학부모들은 별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떤 방향이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만히 지켜보면 우리 학부모들은 현명한 과정을 밟고 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글자를 알고 있을 때에도 읽어달라고 하면 그림책을 중심으로 반복해서 읽어주었고,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도 그냥 읽고 즐기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꾸며서 이야기해도 재미있다고 들어주었고, 좀 더 힘이 붙은 다음에야 추가 설명을 해주거나 확인 질문을 했다. 그 다음 단계에 독서록이나 독후감을 쓰도록 했고, 그 다음에 토론이나 논술과 연관시켰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속도와 경쟁의 바람을 타고 우리들은 아이 수준보다 너무 일찍, 기초 능력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과정을 너무 빨리 제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봄꽃이 떨어져야 초록 이파리가 돋아난다는 것이다. 기초 능력을 쌓을 시기를 놓치면 나무는 바람에 흔들거릴 뿐 실한 열매를 만들 수 없다. 매주 금요일 유치원에 발을 디디며 "가장 첫 번째 문을 열었다" 중얼거리며 들어선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가장 기초적인 읽기·듣기의 힘을 나누기 위하여 이 문을 열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해 보는 아침이다. <임기수·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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