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첫 토요일, 봄기운이 느껴진다 싶더니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이 꽤 뜨겁다.

어스름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공원 놀이터로 놀러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조카애를 아이들 보모로 급히 부르고 나는 남편을 재촉하여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영화시작 30분전에 도착했건만 “다음 타임에 관람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라는 난감한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150석 좌석은 이미 동이 나 있었다.

그날 우리가 본 영화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120분짜리 다큐멘터리 식코(Sicko-아픈 사람들)였다. 무어의 전작인 ‘볼링포컬럼바인’과 ‘화씨911’를 이미 본 터라 그의 영화스타일을 조금은 알고 있었고 이번 영화에서는 또 어느 장면에서 그만의 유머와 풍자를 만나볼 수 있을까 기대를 했다.

약 3억명의 미국인중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5천만명. 영화의 앞부분에 무어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는 병원에 갈 수도 없는 5천만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험가입이 된 나머지 사람들 이야기”라고.

그러나 스타워즈의 웅장한 음악과 함께 알파벳순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보험지급불가 병명들, 열이 40도씩 펄펄 끓고 있는 딸을 안고 찾아간 병원이 가입한 보험계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내쫓겨 결국 딸의 목숨을 잃게 한 어느 어머니 이야기, 병원비 지불이 불가능한 아픈 환자를 길거리에 버려놓고 떠나는 병원차량의 모습, 척 봐도 환자임이 분명한 79세의 노인이 약값면제를 받으려고 고달픈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그토록 닮고자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화면들이었다.

돈 없으면 죽으라는 바로 그 소리였다. 이름과 생년월일만 쓰면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어느 병원에서이건 정성껏 치료해주는 이웃나라 쿠바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닉슨 대통령시절부터 민영화된 미국의 의료보험체제는 천문학적인 로비자금을 의료보험업계로부터 받은 정치인들에 의해 지금까지 유지 되어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쓰여져 있다. 나는 과연 국가로부터 존중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가 의료보험민영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회사에 국민들의 건강을 맡기겠다는 발상, 광우병 쇠고기를 국민들이 먹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식의 대통령의 태도는 국민을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해야 할 국가자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영화 속의 대사가 생각난다. 그 나라의 최저 서민층의 삶을 보면 그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돈 많은 일부 부자들의 삶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삶을 둘러보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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