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 (자유기고가)

올 봄은 비가 드물다. 텃밭에 가지며 고추, 오이, 수박, 토마토 따위의 어린 모종을 심어놓고 비만 기다린다. 가문 땅에서 잘 견뎌줄지 아침마다 그것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그러다 간밤에 살짝 비가 내려주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나머지 모종을 때 놓치지 않고 심을 요량으로 아침부터 남편이 부지런을 떤다. 또 언제 내려줄지 모를 귀한 비다 싶어 나 역시 서두른다. 농사꾼에게야 우습게 보일 만큼 조그만 텃밭이지만 그래도 풀 베고 땅 갈고 거름 내고 하는 일에 한나절이 뚝딱이다.

늦은 토마토 모종이며 수박 모종을 남은 땅에 옮겨 심었다. 다 끝내고나니 그것도 일이라고 기진맥진이다. 허기지고 지친 게 새참 생각이 간절하다.

손 씻을 새도 없이 빵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한 입 베어 문 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이야, 완전 꿀맛이다!"
꿀맛이라. 오백 원짜리 단팥빵이 언제 이렇듯 맛있었던가. 어린 시절 달디 단 왕사탕을 빨아먹듯 행복한 아이의 얼굴을 하고 우린 맛나게 빵을 먹었다.

푸성귀 심어놓고 먹는 단팥빵만 한 게 내 행복 주머니 안에 없었던가. 그 행복 주머니를 채우겠다고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이 무엇이었나 싶다. 내 것이라고 붙잡고 있었던 거창한 것들은 다 어디가고 정작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것들에 웃고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가.

누구나 행복해지려고 바삐 살지만 주변에서 정말로 행복에 겨워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모든 게 차고 넘치는 풍족한 세상인데도 사람들의 행복 주머니는 여전히 비어있는 모양이다. 오히려 채워야할 주머니가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같다. 

혹 우리네 삶이 너무 풍족한 까닭에 삶의 '꿀맛'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어린 날 흙장난 하듯 텃밭에서 뒹굴고만 있어도 삶이 이리 '꿀맛'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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