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인물 복귀시도에 맞선 투쟁으로 제주신문이 종간되면서 도민주 신문인 제민일보가 창간했다.
 

 

 제주도민의 자존심을 기치로 창간된 제민일보는 지난 18년간 제주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비전 제시에 열정을 쏟아왔다. 도민과 전국의 언론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자본으로 탄생한 '도민주' 신문으로서 제주의 역사를 정립하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제주의 자연과 문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런 노력으로 제민일보는 대하기획은 물론 각종 보도를 통해 제주도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 제주의 정치, 사회, 경제 등 18년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제민일보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학술·체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역점사업을 펼쳐왔다.

제민일보는 4·3기획 보도로 한국기자협회상을 수상했다.

18년 땀과 열정

창간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4·3은 말한다'는 10여년간의 현장취재와 보도를 통해 역사속에 묻힐뻔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4·3은 말한다'는 한국 언론사에서 탐사보도의 전형으로 평가될만큼 대표적인 대하 기획으로 꼽히고 있다.

제주지역 역대 도지사 당시 도정과 주요 정책 등을 담은 '도백열전'과 제주의 오름 300여개를 답사하면서 연재한 '오름나그네', 제주신화를 소개한 '신들의 고향-제주도신화 순례'는 서양 신화에 익숙한 도민들에게 다양한 제주신화를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이와 함께 '이야기 제주역사'와 제주 물 역사를 집대성한 '제주도수자원개발사' 등은 제주 지하수의 공수화 시행 등을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꼽히는 대하기획이다.

제주의 자연을 그린 다양한 기획물도 선을 보였는데, 1992년 연재가 시작된 '제주의 포구' '제주의 명목(1996)' '사라져가는 제주문화유산을 찾아서(1997)' '해안선이 사라진다(2000)' '생태계의 보고, 습지(2000)' 등이 대표적인 제주자연을 소재로 한 기획물이다.

또 '현장탐사, 무너지는 오름(2001)' '제주바다 해저탐사(2001)' '곶자왈 대탐사(2003)' '제주잠녀(2005)' '제주바다 수중리포트(2006)' 등도 제주의 자연을 지면에 담아낸 소중한 기획물들이다.

각종 지역현안의 중심도 제민일보였다,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문제점 보도와 제주도개발특별조치법 시안 단독 입수 보도, '10년후 제주, 무엇으로 먹고사나' '성장 동력을 찾아라' 등의 기획물을 통해 제주의 현재와 미래산업에 대한 대안 제시에 노력했다.

재일동포들의 삶을 조명한 '재일제주인-재일동포의 어제·오늘·내일'을 비롯, '제주인의 항일사' '제주언론사' '제주도 중산간 수난사' '제주의 상권' '광복 60년, 제주 60년-제주 60대 사건' '도민이 주인이다'등이 기획 보도됐다.

이외에도 제민기배구대회와 '평화의 섬' 제주국제마라톤대회, 제주관광대상 시상식 및 제주관광홍보사절 선발대회, 백록기 전국 고교 축구대회, 제민일보배 전국 동문 골프대회, 제주중소기업대상 시상식, 올해의 제주인 선정, 4·3 60주년 기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역발전에 기여해 왔다.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면서 제주는 4·3의 아픔을 딛고 화해와 상생의 섬으로 발돋움했다.

제민일보로 본 제주

제민일보가 걸어온 18년 동안 제주도는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난 1991년 4월 노태우-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을 신호탄으로 세계 정상들의 회담이 제주에서 열렸다.

또 지난 1995년 신구범 도지사가 민선 최초의 도지사로 당선되며 풀뿌리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웠으나 행정구조 개편으로 2006년 6월30일 자치시·군과 기초의회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73년 3월5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지정된 지 28년만인 2001년 6월 도내 그린벨트가 전면 해제됐고, 지난 1992년 12월18일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시작으로 2008년 4월15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총선이 치열한 공방 속에 치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4·3 진상보고서가 확정된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4·3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함께 영령들의 넋을 기렸으며, 지난 2005년 1월27일에는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에 서명, 제주를 세계 최초의 '평화의 섬'으로 공식 인정했다.

지난 1991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제주도개발특별법을 시작으로 지난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마련됐으며, 지난 2006년 7월1일에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이외에도 지난 2005년 8월 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한 제주항공이 취항, 저가 항공 시대를 활짝 열었다.

도민들의 이목을 끈 대형 사건도 줄을 이었다.

지난 1992년 8월 발생한 고교생 납치 살인사건과 1994년 8월 일어난 KAL기 착륙 폭발사고는 전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대형 교통사고도 잇따랐는데 지난 2000년 11월 구좌읍 동복리에서 전세버스와 택시의 충돌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 참사는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2002년 6월 열린 한·일 월드컵축구대회는 제주를 뜨겁게 달궜으나 태풍 '루사(2002)' '나리(2007)'는 온 섬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제주공직사회에 씻을 수 없는 불명예도 많았다. 지난 2004년 교육감 선거비리 파문으로 당선자와 후보자 등 4명 모두가 구속됐으며, 전·현직 도지사 모두가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안덕면 화순리를 중심으로 촉발된 해군기지 논란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인 상태에서 도민사회의 최대 갈등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네스코가 제주를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면서 제주 천혜의 아름다움을 세계만방에 알리게 됐다.

 현민철 기자 freenation@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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