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현장] 구좌지역 농가 상당수 화학비료 구입 못해 '난리'
가격 인상되면 혼란 가중될 듯

   
 
  ▲ 14일 오후 구좌농협 앞 벤치에 화학비료를 구입하지 못한 한 농민이 허탈한 표정으로 농협 입구만 쳐다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13일 오후 제주시 구좌농협 앞 벤치에 농민 서너명이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전날 리사무소에서 마을방송으로 구좌농협에 화학비료 추가 물량이 도착했으니, 비료값이 인상되기 전에 구입하라는 소식에 이날 오전 마늘 수매를 마치고 서둘러 달려왔지만 이미 모두 판매가 완료돼 단 1포도 구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모씨(69·구좌읍)는 "농협에 왔더니 추가 물량이 이미 오전에 모두 판매돼 버렸다"며 "올해 콩·감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최소 200포 정도의 화학비료가 필요한 데 지금까지 30포밖에 구입하지 못해 걱정"이라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또 김씨는 "좀 있으면 화학비료가 들어온다고는 하지만 가격이 50∼60% 정도 인상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밭을 놀릴 수도 없고, 결국 빚만 늘어 집도 밭도 다 팔아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아 두렵다"고 한탄했다.

구좌지역 상당수 농가들이 오는 6월말부터 콩을 비롯해 감자·당근을 파종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화학비료를 확보하지 못해 초비상이 걸렸다.

또한 지난 5월초부터 화학비료 가격이 큰 폭으로 인상된다는 소식에 화학비료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지만, 정작 일선 농가 상당수들은 당장 써야할 화학비료를 1포도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다.

이날 구좌농협은 화학비료 8000포를 추가 확보해 올들어 비료를 구입하지 않은 농가들을 대상으로 30포씩 제한 판매를 실시했지만, 이날 오전 농민 350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불과 몇시간에만 모두 동이 났고 수십명은 그냥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또 일부 비료를 구입하지 못한 농가들은 농협 직원들에게 화를 내거나, 막무가내로 비료를 달라고 요구하는 등 하루종일 농협 직원과 농가들 사이에 해답이 없는 실랑이가 이어졌다.

이모씨(63·구좌읍)는 "농사라는게 시기가 중요한데 당장 필요한 비료를 팔지 않으면 농가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농사꾼에게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 어디에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또 "비료값이 한 포에 2만원 가까이 오르면 누가 농사를 짓겠냐"며 "책상에 앉아 경제, 경제 말로만 떠들지 말고 현장에 나와 농가들의 실정을 파악한 후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좌농협 관계자는 "올해 화학비료 확보량이 지난해 절반 수준에 불과해 대부분 농가들이 필요한 물량의 10분의 1도 구입하지 못하거나 아예 1포도 구입 못한 농가도 상당수 있다"며 "비료값이 오르기 전에 단 1포라도 더 구입하려는 농가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재고가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또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화학비료 가격이 인상되기 전에는 추가 물량을 확보할 수 없을 것 같아 향후 가격 인상 후 농가들의 반발이 더욱 커질 것 같다"며 "솔직히 비료 1포 가격이 땅값보다 비싸면 누가 농사를 짓게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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