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close

제민일보

사이드바 열기
HOME 4·3 4·3 60년, 지상유물전
죽음의 섬으로 변한 제주역사 낱낱이 증언4·3 60주년 지상유물전 <12>다시 시작하는 4·3-(12)불타는 섬
박훈석 기자
입력 2008-06-17 (화) 10:28:45 | 승인 2008-06-17 (화) 10:28:45

   
 
  ▲ 죽음의 섬=4·3 당시의 교수, 참수, 질식사, 수장 등 학살의 유형과 행방불명자, 그리고 발굴된 유골들을 상징화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군경 토벌대 초토화·학살작적으로 도민 3만명 목숨 잃어
평화기념관 곳곳에 참혹한 역사현장 사진·영상물로 부활

1948년 11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제주도민 3만명이 목숨을 잃고, 가옥 3만92853동이 소각된 제주4·3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내 4관 '불타는 섬'은 이승만 정부의 초토화 작전으로 9연대와 서북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되고, 불에 탄 제주섬의 실제 이야기를 방문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전시공간내 연출내용 또한 이념에 관계 없이 국내·외 모든 방문객들에 대해 60년전 제주에서 발생했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일깨우고 있다.

△고립된 섬, 거대한 감옥·학살터

미군정이 제주 수뇌부 회의에서 무장대와 평화 해결을 주도하던 김익렬 제9연대장을 전격 해임, 박진경 중령으로 임명하면서 제주섬은 강경 진압의 비극적인 사태를 맞았다.
또 무차별 토벌작전을 벌이던 박진경 연대장이 부하에 의해 피살된후 부임한 일본군 지원병 출신의 송요찬 9연대장은 1948년 10월17일 '정부의 최고 지령'에 따라 "해안선에서 5㎞ 이외에 있는 사람은 이유여하를 불구하고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발포, 제주도민 집단 학살극을 예고했다.

학살극은 불법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령에 의해 현실화됐다. 1948년 11월17일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령 발포는 참혹한 초토화와 학살작전을 뒷받침했지만 당시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령으로만 선포,  '불법 계엄령' 논란을 받고 있다.

   
 
  ▲ 폐허의 방=토벌대의 소개에 이은 마을 방화=로 불에 타서 폐허가 돼버린 마을이 모형연출 기법으로 전시됐다.  
 
계엄령이 선포되자 학살은 극에 달했다. 초토화와 학살작전은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독립군은 물론 의병 등 조선인을 탄압하고 말살하기 위해 사용했던 '삼진정책'(三盡政策)이 그대로 적용되면서 커다란 비극을 낳았다.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앤다"는 살해·파괴·소멸의 삼진정책은 중산간지역의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차별 학살로 이어졌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의 불과 4개월간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에 타 없어졌고, 수많은 인명의 희생되는 등 제주섬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해안지대로 소개한 중산간 주민들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집단 학살됐다. 이 무렵에는 무장대의 습격으로 민간가 불타고,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좌익와 우익의 이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주민들은 초토화작전으로 무차별 희생됐다.

1949년 4월1일 작성된 미군 정보보고서에는 "9연대가 중산간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으며, 1948년 한해동안 1만5000여명의 주민이 희생됐다. 그중 80%가 토벌군에 의해 희생됐다"고 기록돼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부터 1949년 봄까지 자행된 군·경 토벌작전으로 제주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됐다.

1949년 3월 춘계 대토벌과 선무공작이 전개되면서 한라산에 숨었던 주민들이 대거 하산했지만 상당수가 주정공장 등에 수용됐다가 불법으로 진행된 군법회의를 거쳐 전국 각 지역 형무소에 수감됐지만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즉결처분됐다. 당시 보도연맹 가입자, 요시찰자 및 입산자 가족 등도 대거 예비검속, 총살당하거나 행방불명되는 등 학살극은 그치지 않았다.

학살극은 결국 1954년 9월 한라산금족령이 해제되면서 중단됐고, 6년여에 걸친 제주4·3도 종결됐다.

   
 
  ▲ 처절했던 피난생활=피난생활은 너무나 처절했다. 학살극을 피하기 위해 한라산으로 숨어들었던 많은 피난민들이 굶어죽고, 얼어 죽었다.  
 
△참혹한 제주섬 역사 기록 산실

제주4·3 60년이 흐른후 올해 3월말 문을 연 제주4·3평화기념관은 4관의 '불타는 섬'을 통해 제주섬의 참혹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토벌대의 강경진압작전으로 인한 학살과 무장대의 공격으로 제주도 전체가 죽음의 섬으로 변해가는 역사를 낱낱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불타는 섬'(Burning Island)의 제목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목탄의 거친 흑백톤으로 불타는 섬과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방문자들도 애니메이션을 통해 60년전에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군·경토벌대에 쫓기는 절박한 상황을 체험하고 있다.

토벌대에 쫓겨 한라산에 숨어든 피난민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붕도 없이 돌담으로 두른 2~3평 남짓의 공간에서 처절하게 생활했던 피난생활은 제주4·3평화기념관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먹을 것이 없고, 덮을 것이 없었던 많은 피난민들이 굶어죽고, 얼어 죽었다.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의 선무공작에 따라 하산한 주민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진실을 통해 새기고 있다.

'피난민, 산에서 내려오다'의 주제로 펼쳐진 그림과 당시 수용소로 이용됐던 주정공장 및 수용자들의 모습을 지나면 불법으로 치러진 군법회의에서 사형되거나 형무소로 옮긴 역사적 사실이 기다리고 있다. 당시 하산한 주민들 가운데 1660여명의 주민이 제주비행장에서 총살되거나, 전국 형무소로 보내져 감금됐다.

'불타는 섬' 전시공간 한 곳에 만들어진 '폐허의 방'은 60년전 제주섬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토벌대의 방화 행위가 드러난다.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폐허의 방은 당시 불에타서 지옥으로 변한 마을이 모형연출 기법으로 전시돼 있다.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가 60년전 군경 토벌대의 삼진정책에 의해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로 변한 진실을 제주4·3평화기념관은 전하고 있다.

박훈석 기자  hss9718@hanmail.net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훈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제민일보 네이버에서 본다"

도내 일간지 유일 뉴스스탠드 시행

My뉴스 설정방법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