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춘추시대 제나라 선왕이 피리를 좋아하여 피리 잘 부는 사람 삼백명으로 합주단을 만들었다. 당시에 남곽이라는 사람은 피리를 불 줄 모르면서도 삼백명이라 는 많은 인원에 섞여서 피리를 부는 체하면서 녹을 타먹었다. 선왕이 죽고 그 뒤를 이어 등극한 왕이 하루는 삼백명을 모두 불러모아, 합주가 아니라 한 명 씩 피리를 불게 하였다. 남곽은 줄행랑을 쳤다.

이 고사에 빗대어서, 능력이 없어 자신이 맡은 직책을 감내하지 못하는 자가 어떤 직 책을 맡고 있을 때, 취우(吹 )의 대?대열에 끼였다고 비유한다. 남곽같은 자가 어느 시 대엔들 없으랴. 남곽의 고사가 자주 거론되는 만큼 정당치못한 녹을 타먹는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남곽이라는 인간의 죄를 더듬어보자.
첫째는 부정·비리를 저지른 죄. 재주도 없으면 서 재주있는 사람들 틈에 끼여 나라의 녹을 받아먹고자 하였으니, 부정한 방법을 쓰 지 않을 도리가 없다. 둘째, 도둑질한 죄. 하는 일도 없으면서 나라의 돈을 쏙쏙 빼 먹었으니, 영락없는 도둑질이다. 셋째, 우둔죄. 소리로 하는 일이라 금방 들통이 날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한 채 자기훈련을 하지 않은 우둔함 또한 죄이다. 넷째, 환 경오염죄. 피리부는 시늉만 내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는데, 뻔뻔 스럽게 버팀으로써 또 다른 남곽이 나올 가능성을 만든 죄. 다섯째, 불감죄. 죄를 저 지르면서도 죄의식이 없는 양심불량이요, 사람의 얼굴을 하고도 뻔뻔스러운 몰염치가 대단한 도덕적 불감증이다.

그래도 남곽같은 자가 삼백명중에 한 명인 시대는 참 괜찮은 시절이다. 지금 우리의 이 시절에 취우의 대열에 낀 자는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남곽같은 자가 너무 많아서 차라리 남곽같지 않은 자가 몇 명이냐고 물어야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모 시민단체에서 발표한 낙선운동 대상자 명단에 오른 숫자를 들으면서, 또 그 많은 숫자에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숫자가 더 많아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 이 진하게 드는 것은 이 땅의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

이 시점에서조차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모처럼 일고 있는 시민 정치운동을 여야의 정치인들이 한 목소리로 비난하는 분위기이다. 정치권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회가 안고 있는 부정적 현상을 모를 리 있을까. 그러면서도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불법행위라느니, 정치적 폭력행위, 심지어는 정치테러라고 반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남곽의 죄를 능가하는 꼴이다.

남곽의 우둔함과 몰염치, 도덕적 불감증을 훨씬 넘은 꼴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마치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골 깊은 불신감 을 모르는 듯하고, 시민의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 변화되었는지를 모르는 듯하다. 정치권의 부정적인 행태가 사회전반에 미친 환경오염죄를 정말 모르는 듯하다. 더욱이 얼마 전 시애틀에서 세계 강대국들의 자기이익을 위한 행진을 저지시킨 시민단체의 힘을 모르는 듯하다. 지금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부끄럼도 없이 저지르고 있는 정치권의 우둔함은 가히 만성질환이다. 어느 정치인은 그래도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정치권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그 만성질환 증세가 만연한 상황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잦아들까 문득 염려스럽다.

한국사람은 죄의식보다 수치의식이 강하다고 했던가. 죄의식이 자신의 양심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라면 수치의식은 타인을 의식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죄의식은 없고 수 치의식은 살아 있는 정치인들에게, 시대 지형을 판별하지 못하는 우둔한 정치인들에 게 수치감을 들게 하자. 이 땅의 정치문화를 위하여, 이 땅의 인간적 민주사회를 위 하여. <하순애·제주문화포럼 원장><<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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