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증오를 넘어 평화·인권을 배운다

   
 
   
 
세계 인종살인극과 제주4·3 대량 학살 비교하는 공간
무고한 주민 희생 막았던 의로운 사람들 이야기도 수록
제민일보 취재반 발굴 자료 60년전 진실 알리기 토대 마련

제주4·3평화기념관은 분노와 증오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60년전 잘못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제주도민 최대 3만명이 집단학살됐지만 평화기념관은 말 그대로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는 공간이다. 평화·인권, 화해·상생의 소중함을 배우는 공간은 4관 '불타는 섬'(초토화·학살)의 중심부에 자리한 2층 특별전시관이 맡는다.

△4·3을 사색·반추하는 공간
2층 특별전시관은 '죽음의 섬'  코너와 1949년 군·경 춘계대토벌과 선무공작으로 하산한 주민들을 집단 수용한후 불법 군법회의를 거쳐 전국 각 지역 형무소에 수감하거나 총살한 '학살극 끝난줄만 알았건만' 코너의 가운데 위치해 있다.

방문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안내시설이 미흡하지만 이 곳에서는 세계의 대량 인종학살(제노사이드) 사건과 함께 제주도 대량학살의 광풍 속에서도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이 곳은 제주4·3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 등 방문객들에게 60년전 제주도민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와 실상을 종합적으로 사색, 이해도를 높여준다.

1~4관을 거치면서 제주4·3의 발생 원인·배경 및 강경진압작전에 의한 초토화·학살을 목격한 방문객들은 2층에서 다시 한번 자신이 걸어온 길을 사색한후 앞으로 마주할 5관(진상규명운동)과 6관(새로운 시작)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곳이다.

유대인을 살린 독일인 쉰들러처럼 무차별 학살이 자행된 제주4·3에도 의로운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세계 제노사이드와 제주4·3
세계의 제노사이드 코너는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킬링필드,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발칸반도 보스니아·코소보의 비극, 동티모르 희생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제주4·3 주민학살과 비교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제노사이드 용어는 유대인 출신의 법학자 렘킨에 의해 명명됐다. 렘킨은 나치 독일이 자행한 대량 인종학살에 대해 인종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제노스'와 살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사이드'를 합성한 제노사이드가 기존의 전쟁범죄나 반인도 범죄와 구분지었다.

제노사이드의 사례로 제시된 홀로코스트는 히틀러의 나치스가 1941~1945년까지 무려 600만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으로서, 후세 사람들은 유대인 대학살을 홀로코스트라 이름 붙여 다른 유사 사건들과 구분했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 난징을 함락한 일본군이 6주만에 중국인 30만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에는 일본군의 중국인 목베기 경기 등 잔인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진과 당시 상황을 보도한 신문자료 등의 증거를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다.

또 1975년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지도자인 폴포트의 대량학살을 보여주는 킬링필드, 오스만제국이 1915~1916년 그리스 정교를 믿는 소수 민족 아르메니아인 150만명 학살극, 1991~1999년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종교·문화가 다른 보스니아·코소보 민족에 대해 자행한 학살극 등이 제노사이드로 소개됐다.

△4·3의 의로운 사람들
제노사이드 옆에 위치한 '의로운 사람' 코너는 60년전 군·경 초토화 작전과 무장대의 공격으로 죽음의 섬으로 변한 폐허속에서 무고한 희생을 막으려는 의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막기 위해 힘썼던 독일인 '쉰들러'가 있었다면 제주4·3에도 의로운 사람들이 존재했다.

당시 제주주둔 김익렬 9연대장과 문형순 모슬포·성산포경찰서장, 남원면 신흥리의 '몰라구장' 김성홍씨, 신흥리 파견소장 장성순 경사, 표선지서 강계봉 순경, 서북청년단원 고희준씨, 이북 출신으로서 이름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주민 총살명령을 회피한 경찰 '방(方)경사'등의 의로운 바람이 대량학살 광풍속에서 의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집단학살 위험에 처한 제주도민들을 구해낸 의로운 사람들은 제민일보 4·3취재반이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다.

제민일보가 발간한 대하실록 제주민중운동사「4·3은 말한다」는 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당시 미군정의 강경진압작전을 거부, 제주4·3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도민 희생을 막기 위해 헌신했던 제주주둔 제9연대 김익렬 연대장의 유고록은 대표적인 진실찾기의 성과다.

취재반이 입수, 신문보도와 함께 「4·3은 말한다」2권의 부록으로 실린 김익렬 연대장 유고록은 평화와 유혈사태의 갈림길에서 미군정에 의해 강제로 해임되기 직전까지 무장대장 진영으로 들어가 김달삼과 '4·28 평화협상'을 체결하는 등 무고한 양민을 지키려 했던 증언이 실려 있다.

특히 이 유고록은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1970년대에 4·3에 대한 미군정과 경찰의 실책이 은폐되고, 왜곡되는 것에 공분, 4·3의 진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취재반이 입수한 유고록은 4·3평화기념관 '의로운 사람들' 코너에 유족들이 기증한 당시 김익렬 연대장의 망원경 등 유품 10점과 함께 공개돼 있다.

문형순 파출소장 등 나머지 의인들의 이야기도「4·3은 말한다」에 실려 있다.

초토화작전의 실상을 다룬 5권에는 6·25전쟁 발생 직후 예비검속자 학살 명령을 거부한 독립군 출신의 문형순 서장을 비롯해 시흥리 주민을 석방시킨 서청단원 고희준씨, 총살명령에도 "총에 탈 나서 안 나갑니다"며 쏘지 않은 방경사, 표선국민학교 수용소 담당자로서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한 주민을 구해낸 위미리 출신의 강계봉 순경, 토벌대의 주민 성향 파악에 무조건 "모른다"고 일관한 신흥리 당시 김성홍 마을구장 등의 의로운 이야기는 무차별 학살극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례이다.

도내 곳곳을 누빈 취재반의 활동은 묻혀졌던 4·3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면서 화해·상생, 평화·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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