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택(갤러리 하루 대표·제주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한동안 열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다. 늘 스스로 낫기를 바라지만 속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현실에서는 휴식을 통한 스스로 낫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병원을 찾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낫기를 바라며.

시선을 나에게서 도시를 향해본다. 조금만 신경 써서 도시를 보게 되면 우리의 도시가 비명을 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로며, 건축물이며, 광장이며, 시장이며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가 결국은 서로 지쳐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

상처 입은 도시는 누구에게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이 도시가 아플 때도 도시를 치료해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를 인식한 도시들은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서 도시를 치료해주고 있다. 어떤 도시에서는 지자체 내에 도시관련 실무부서 중심으로 저마다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10년, 100년을 내다보는 청사진을 만들어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도시의 미래를 도시의 정체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외부의 용역업체에 맡겨 나라 전체의 도시를 똑같은 패턴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도시를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주목받고 있는 도시는 서구가 아닌 브라질의 꾸리찌빠나 콜롬비아의 보고타이다.

도시를 치료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첫 번째 방법은 다름아닌 자동차의 제한이다. 도시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는 자동차인 것이다. 무분별하게 인간의 영역을 침범해버린 자동차는 인간을 대신해서 도시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사람의 통행을 위해 자동차가 양보를 해야 맞는데, 오히려 자동차가 빨리 지나가겠다고 큰 소리치는 세상이다. 도시 안의 시설을 이용하는데도 사람이 드나들기 편해야 하는데 자동차가 더 편하다. 사람들이 통행하기 불편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가 다니기 힘들다면 도로가 보수되고, 조금더 빨리 가라고 직선으로 도로를 다시 만들어주고 신호등 마저 조정해준다.

이제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도시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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