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우울한 여름-사는 게 더 힘든 ‘가난한’노인들

집·자식 등 이유로 지원 대상서 제외 많아…전기·수도세 부담에 여름 나기 힘들어
수급자가 오히려 다른 노인 돌보는 ‘빈곤’악순환, 더위 피하려 나가는게 더 큰 일

제주시 낮 최고 기온이 닷새째 30도를 넘으면서 일 최저 기온이 다시 열대야 기준을 넘어선 26.3도를 기록한 12일 찾아간 노인들의 일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치매 증상 때문인지 계속해 앞뒤가 맞지 않는 질문만 던지는 고모 할머니(85·제주시 건입동)를 돌보고 있는 이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8년 넘게 투병중인 아들 오모씨(62)다.

   
 
  고 할머니는 골동품 선풍기 한대로 올여름을 나고 있다. 뇌경색으로 거동은 힘들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들이 있어 살고 있다.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겨워 보이는 고 할머니 모자는 오씨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살고 있다고 했다. 매달 35만원 정도를 받지만 연간 사글세 200만원을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 두달에 1번 쌀(20㎏)을 지원 받고 밑반찬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지만 요즘 같아선 하루 살기도 버겁다.

고 할머니는 오씨 외에도 부양의무가 있는 다른 자식들 때문에 수급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집에 있는 것이라곤 골동품에 가까운 선풍기 2대와 냉장고, TV가 전부. 유난히 길고 더웠던 여름밤 때문에 선풍기 없이는 잠을 청하기도 힘들었지만 한달 1만원, 많아야 2만원이던 전기세가 지난 7월 3만원을 넘겼다.

고모 할아버지(85·제주시 일도1동) 사정은 더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현관을 지나 들어선 곳은 집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지붕과 벽이 있는 창고였다.

   
 
  요즘은 자리보전하는 날이 더 많다는 고 할아버지는 기자가 방문한 날도 "이렇게 사느니 죽고싶다"며 하소연했다.  
 
고 할아버지는 한 살 많은 할머니(86), 그리고 세입자인 현모 할아버지(83)와 살고 있다.

폐지나 빈병을 수집 해다 판 돈으로 생활비를 조금 보탰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자리보전하는 날이 더 많다.

고 할아버지의 방 역시 냉장고와 오래된 라디오 한 대가 전부. 그 냉장고 역시 오래 비어있었는지 여기 저기 먼지가 끼어있었다.

   
 
  고 할아버지 방에 있는 냉장고는 윙 하는 모터소리가 전부로 텅 비어있다.  
 
고 할아버지 내외 역시 수급 대상자가 아니다. 본인 소유의 ‘집’이 있고, 자식이 있다는게 이유다. 하나 뿐인 아들이 교통사고 후 부산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20년 가까이 치료를 받고 있어 수급대상이 된 현 할아버지가 집세로 내는 연 50만원과 지역내 기관 등에서 비정기적으로 지원해 주는 후원금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아직 갚아야할 빚이 남아있다.

현 할아버지는 “제대로 먹는 것도 어려운데다 어찌나 더운지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았다”며 “거동이 쉽지 않아 방을 나서는 것이 전부였다”는 말을 한숨처럼 토해냈다.

고 할아버지도 “전기세가 무서워 선풍기를 맘껏 틀기 위해서 집안 전등은 거의 안켜고 산지 오래됐다”며 “물도 밥을 해먹을 때나 쓸 뿐 제대로 씻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 할아버지 집 입구 구조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다. 지난해 나리 피해 이후 집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위태위태하지만 어떻게 손대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부는 날은 선풍기 마저 끈다. 지난해 나리 태풍이 쓸고 간 뒤 집 천장이며 옷가지에 곰팡이가 피었지만 손볼 나위가 없다고 했다.

취재에 동행한 한 자원봉사자는 “동사무소 등의 추천을 받아 현장에 나가보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곳도 있고 기대와 다른 곳도 있다”며 “급여 지급 기준이라는 게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힘든 사람들을 위한 지원 장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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