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숙(주부)

작년 이맘때 즈음, 제주가 태풍 후유증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육지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여섯 살 난 조카애가 시속 80킬로 정도로 달려오는 승용차에 치였다고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조카를 친 그 운전자는 아이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뒤따르던 아이엄마 즉 내 언니는 아이가 치이는 광경을 바로 뒤에서 보고야 말았다. 15미터 정도 튕겨져 나간 조카애를 부둥켜안고 인근병원으로 옮겼으나 아이는 뇌사상태에 빠졌고 심장도 멎어갔다.

결국 아이는 신장과 간 등 사용가능한 장기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저세상으로 갔다. 너무 어린나이에 하늘로 가버린 조카도 조카지만 그걸 지켜본 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아이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무책임한 엄마라는 따가운 주변의 눈초리와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애처로움을 평생 지고가야 하는 업보는 그 무엇보다 가슴을 짓누를 것이다.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을 지켜보니 정말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겪고 있는 주변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진정 내 것인가 하는 의미심장한 질문도 던져볼 수 있게 되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실 수도 있고 남편이 해고통지서를 불쑥 내밀수도 있으며 태풍으로 인해 마당에 세워둔 승용차가 빗물에 떠밀려 유리창을 뚫고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영원히 건강할 것만 같은 내 몸이 어느 때부터 삐거덕거리더니 한시라도 약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과대망상 같은 생각도 드는 걸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구나싶다.

여름의 열기를 보내고 생각과 사색의 계절인 가을을 맞이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 숙인 벼를 보고 겸손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듯 나 자신의 오만과 편견과 무지함을 되새기고 자연에게 이웃들에게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자식들에게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가을 초입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