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한국전쟁 당시 제주에 내려온 그는 제주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그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남긴 글로 ‘무명작가 S군에게’라는 글이 있다.이 글은 현재 도내에 있는 교지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진 ‘현악’ 창간호(오현고,1953)에 실려 있다.

 유명작가 계용묵의 글이 섬의 한 학교 교지에 실렸다는 의미를 떠나 교지는 시대마다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교지는 학교교육의 역사이면서도 그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단편인 것이다.

 교지는 학생들의 사소한 얘깃거리도 놓치지 않는다.여고시절의 풍부한 감성을 풀어낸 ‘동백’16호(제주여고,1968)는 모의고사 성적까지 공개하며 교내 1·2등을 다투던 이들의 이름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도내 교지는 4·3과 한국전쟁이라는 아픔의 역사와 함께 한다.해방후 도내 문학동호인들은 ‘신생’(1948)을 발간했으며,1952년에는 계용묵 등이 주축이 돼 ‘신문화’를 창간했다.이같은 문학활동은 학교 교지 탄생의 밑바탕이 된다.

 이후 교지로서 ‘현악’이 만들어졌으며,각급 고등학교에서도 교지가 편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50·60년대 발간된 교지는 현재처럼 발행주기가 일정하지는 않았다.무크지 형식으로 발행되기도 했으며,서너차례 발행되다가 끊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교지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다.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도내 교지에는 도지사의 축사가 실릴 정도로 교지 발간이 큰 행사였다.

 70년대이후는 교지에 점차 변화가 일어난다.표지에 컬러사진이 등장했다.‘천제’2호(중문중,1971)는 컬러사진을 표지로 처음 등장시킨 교지였다.

 초등학교 문예지도 이때부터 나온다.‘한수풀’(한림교,1973년 창간),‘조약돌’(효돈교,1978),‘우리들은 자란다’(제주남교,1976년 창간) 등이 이 때 선을 보였다.

 1977년 발간된 ‘국향’창간호(제주여상)는 전국교지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도내 교지의 위상을 전국에 알렸다.

 80년대부터는 교지가 보다 다양해진다.특히 인쇄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교지발간이 활발해졌다.등사지를 철필로 긁어 교지를 만들어내던 노력은 추억에서나 찾는 옛 풍경이 됐다.

 신세대,N세대로 대변되는 90년대는 컴퓨터의 보급에 따라 세련된 멋을 풍기게 된다.또한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하면서 학부모의 글이 교지에 등장하는등 교지에 수록되는 글이 다양해졌다.

 지난해 제주교육박물관에서 열린 ‘추억의 교지전’을 맡았던 김현자교사(제주일중)는 “오래전 만들어진 교지는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90년대이후 발간되는 교지인 경우 소식지 형태로 많이 발간되는 특징을 갖는 반면 예전보다 다소 가벼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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