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리’보다 혹독한 체감 경기
제주 고통지수 상승폭 전국 최고…교통비 부담 급증 "오가는 비용이면 겨울날 정도"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더 이상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민족 최대 명절이 추석이 코앞이지만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우울하고 가슴아픈 이야기 투성이다. 대목경기가 실종된 상가와 시장은 썰렁하기만 하고 갈수록 얄팍해지는 지갑 사정은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모이는 기회마저 앗아가고 있다.

갈수록 싸늘해지는 체감경기에 팍팍해지는 인심까지 보태지면서 이번 명절이 ‘한(寒)가위가 될까’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 ‘나리’보다 혹독한 체감 경기

제주 고통지수 상승폭 전국 치고…교통비 부담 급증 "오가는 비용이면 겨울날 정도"
'인사치레' 추석빔도 없어진지 오래, 생활물가지수 전년대비 9.1% 상승  가계 위축

△고통지수 최고조…가족 만남도 막다

마을 입구에 수십년째 손바닥만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 할아버지(73)는 올 추석 쉬지 않을 계획이다.

지난해는 태풍 나리 핑계로 타 지역에 나가 있는 4남매 모두가 모처럼 고향을 찾았지만 지금은 걸려오는 전화마다 ‘힘들다’는 말뿐이다.

이 할아버지는 “오가는 교통비면 여기 두 식구가 겨울을 나도 남을 정도”라며 “문전제 정도만 지내고 가게문을 열어두면 오가는 사람 구경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할아버지는 그러나 자식들한테 누가 될지 모른다며 끝까지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기름 값은 물론 각종 생활물가가 천장부지로 뛰어오르면서 도내 서민가계의 체감 경기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제주 경제 고통지수는 올들어 가파른 상승곡선을 이어가며 전국에서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하는 등 타 지역에 비해 살림살이가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16개 시·도의 생활경제 고통지수(물가 상승률+실업률)는 지난 7월 8.9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9번째 수준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7월 3.9였던 것을 감안하면 체감 고통지수는 커진다.

△당장 내 사정도 어려운데…

장바구니 물가 사정도 마찬가지다. 통계청 제주통계사무소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올 상반기만 해도 4%대던 물가 상승률은 5월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7월 7%로 최고점을 찍었다. 8월 6.5%로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기는 했지만 예년에 비해 이른 추석으로 제수용품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잇따르면서 가계 부담을 키우고 있다.

가계부와 밀접한 생활물가지수는 전년대비 최고 9.1%까지 뛰어오르면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게 하고 있다.

‘경기를 타지 않는’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복희씨(42·제주시 연동)는 일치감치 올해 가을 장사를 접었다.

이씨는 “지난해는 나리 때문에, 올해는 경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장사를 한지 5년 가까이 되지만 주변에서 ‘추석빔’이라며 인사치레 하던 것도 없어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경기 위축으로 굳게 닫힌 지갑에 직격탄을 맞은 음식점은 물론 가을 특수를 기대했던 의류 매장들에서도 ‘악’소리가 나고 있다.

‘임대’를 내건 점포는 물론 재래시장 등에는 주인을 잃고 비어있는 매장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등 추석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당포 문을 연지 3년째라는 한 업주는 “세태를 반영해 경기 위축 때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은 다 옛말”이라며 “가게를 접을 계획”이라고 서둘러 말을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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