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 ((사)제주환경연구센터 사무처장 )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농사짓고 살던 예전에는 1년 내내 땅에 코 박고 살다가 이맘때가 돼서야 겨우 수확을 했습니다. 고된 노동 후에 거둬들인 수확물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풍요로웠을까요? 그러니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고 하늘에 감사하며 조상님 덕이라 머리 조아린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흙과 멀어져 버린 오늘 날 추석은 더 이상 감사할 그 무엇이 아닌 듯합니다. 도시인에게 추석은 이제 소비해야 할 상품 같습니다. 대형 매장마다 한가위 행사를 한다고 법석입니다. 온갖 상품들이 '한가위 선물세트'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포장을 쓴 채 넘쳐납니다. 점원들도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한복을 울긋불긋 차려입고 손님을 맞습니다. 이쯤 되면 추석이 무슨 이벤트 행사 같습니다. 그저 우리의 지갑이 열리기만을 유혹하는.

그래서일까요? 추석이라고 들뜨거나 신나지 않는 것은. 특별히 더 맛 나는 음식도 없고, 새 옷 생겼다고 좋아하던 어린 시절도 옛일이 돼버렸습니다. 오히려 명절이면 기름진 음식 많이 먹어 살찐다고 신경 써야 할 판입니다. 1년 내 과일이며 곡식이 넘쳐나고, 사철 유행이 바뀌며 매장마다 새 옷이 내걸리는 시대입니다. 땅에서 멀어져 버린 채 수확물 없이 지갑만 열어야 하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추석은 박물관의 유물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아직 시골 마을에서 맞는 추석은 조금 달라 보입니다. 퇴근 하는 길에 동네 공터에 검은 돌처럼 박힌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이미 어두워져 버린 후라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춰보고 나서야 동네 어르신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외만 사는 그 분들은 컴컴해진 밤까지 깨를 털어 쓸어 담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내일 모레로 다가온 추석 때문이겠지요. 두 노인네는 그토록 분주하게 거둬들인 것들을 도시에서 온 자식들 보따리 속에 바리바리 싸줄 테지요.

마을 어귀에는 벌써부터 현수막도 내걸렸습니다. '고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집 떠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바람에 펄럭거립니다. 그리운 것이 남아 있는 시골의 추석은 아직도 설렘으로 일렁입니다.    

달이 떴습니다. 아직 다 차지 않은 달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농사꾼으로 흙속에서 파묻혀 있다가 이맘때쯤 바라보았을 한가위 보름달! 아마도 부러울 것 없이 차오른 곳간을 떠올리진 않았을까요? 아, 우리들이 가진 곳간은 무엇으로 채워야 배가 부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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