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숙(주부)

한 카톨릭 사제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 사제이기도 하지만 환경운동에 더욱 열심인 분으로 강원도 평창에서 공동체를 꾸려 농사도 짓고 환경교육도 시키신다고 하신다. 이곳이 조금 알려지자 올 여름만 해도 약 천오백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방문객의 상당수가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학부모들이라고 한다. 걸핏하면 학교가기 싫어하고 친구들과 싸우고 부모 말 안 듣는 그런 학생들 말이다. 신부님은 자신에게 내맡겨진 그 아이들에게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여기 있는 동안 네 마음대로 해라. 잠자고 싶을 때 잠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단, 식사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안 먹는 것은 너의 자유지만 먹고 싶다면 정해진 시간에 식당으로 와서 먹어라" 라고만 한단다.

그렇게 아이들을 내버려두면(?) 그들은 처음 며칠간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부님 역시 농사지으랴 교육하랴 봉사 활동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니 거의 관심도 기울이지 못한다고 한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으니 아이들은 방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과연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신부님 표현에 의하면) 밖으로 기어 나와 슬슬 주변경관을 둘러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뭘 하나 기웃거리기도 하더니 신부님께 면담요청을 한다고 한다. "그래 뭐 내게 하고 싶은 말 있니?"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가만히 생각해봤는데요. 지금 다니는 학교 계속 다녀야 할 것 같아요. 졸업도 해야 할 것 같고요."라고 한단다.

그러고선 올 때의 침울한 표정과는 달리 훨씬 밝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신부님은 "문제아는 없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안주는 어른들이 문제이고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못미더워하는 부모들이 문제다."라고 결론지으신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이미 머릿속에 아이의 인생계획표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한글은 몇 살에 떼야 하고 영어공부 시작시기가 결정되면 아이들은 부모가 계획한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학교의 숙제는 왜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기보다 인터넷을 뒤져 숙제를 대신 해주면 부모 된 도리를 하고 있다고 느끼고,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와 목적을 함께 의논하기보다는 남들이 다하니 너도 해야 된다는 일상적 규칙으로 정해버린다.

아이들 스스로 왜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사색할 여유 없이 부모는 앞질러서 자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선다. 있어봐야 한두명인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사회의 부모들은 그렇게 아이들의 역할과 권리를 앗아가고 있는 것 같다.

신부님은 말씀을 이으셨다. "그렇게 부모 말 잘 듣고 일류대학 나왔다고 해서 과연 모두 행복한가?"라고 자문해 보라고 말이다. 알려지다시피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낮은 편이고 아이를 길러내는 비용은 그 어떤 나라보다 많으니 부모와 자식들 모두 행복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색의 계절 가을, 문을 잠그고 있는 우리아이들 방문을 두드리기보다 스스로 아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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