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앤팡] 오름이야기

1000년 탐라의 역사가 숨 쉬는 제주. 1만8000의 신(神)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곳. 제주는 그러나 한(恨)이 서린 섬이다.

본토에서 400리나 떨어져 있는 외로운 절해고도.  돌이 많은 땅은 척박해 제주섬 사람들에게 쉽게 곡식을 내주지 않았고 겨우내 불어오는 칼바람은 섬 사람들의 얼굴을 도래냈다.

그래서 제주의 경관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 같다. 제주섬에 오롯이 내려앉은 오름은 그 아픔을 보듬어내는 듯 싶다.

오름은 곧 제주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설화다. 아주 먼 옛날 설문대할망이 있었다. 설문대할망은 어느 날 망망대해 한가운데 제주섬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치마폭 가득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설문대할망의 터진 치마폭 구멍 사이로 흙이 떨어졌다. 떨어진 흙은 제주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든 오름이 됐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소화산체로서 봉우리를 뜻하는 제주어(語), 오름.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 전역으로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간 368개의 오름은 제주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마다 다른 모양이지만, 올망졸망 친숙하다. 제주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오름은 곧 제주인이었다.

용왕 아들 삼형제와 오름

오름은 제주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신들의 고향이다. 오름 하나하나마다 전설이 서려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름에 얽힌 전설 하나를 소개한다.

서귀포시 표선리에서 서북쪽 1.5㎞ 지점에 있는 매오름. 오름 형태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매를 닮았다고 해서 매오름이라 불린다.

먼 옛날 남해용왕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왕자들이 나라의 법을 어기자 용왕은 아들 삼형제를 제주 섬으로 귀향 보낸다. 용궁에서 곱게 자란 왕자들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난에 찌들어 굶기를 예사로 알았던 제주사람들은 그 누구도 용왕의 아들들에게 밥 한술 주지 못했다.

왕자들을 제주 섬으로 귀향 보낸 용왕은 아비로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왕은 조용히 자신의 사자인 거북을 불러 귀향 보낸 아들들의 근황을 알아보라고 한다.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왕자들의 모습에 거북은 깜짝 놀란다. 그러나 거북은 한편으로 제주사람들을 이해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가난하다보니 그 누구도 왕자들에게 밥한 끼, 입다 남은 옷 한 벌을 줄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거북은 용궁으로 돌아와 용왕에게 모든 사실을 아뢴다.

용왕은 거북의 말을 듣고 왕자들을 불러들이라고 한다. 또한 왕자들을 불러들이기 전에 왕자들에게 은혜 베푼 사람이 있다면 은혜를 갚는 것이 순서라며 은혜 베푼 사람들을 찾으라고 한다.
용왕의 명을 받아 다시 제주 섬을 찾은 거북은 마 뿌리 한 사발을 준 박씨 외에는 왕자들을 도와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용왕은 거북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화가 난 용왕은 왕자들을 데려오는 즉시 제주 섬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려고 작정하고 박씨만 산꼭대기로 피신시킬 것을 거북에게 명했다.

제주 섬을 다시 찾은 거북. 거북은 박씨에게 내일 아침에 왕자들을 데리고 용궁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용왕의 진노로 제주 섬이 물에 잠길 것이니 저 앞에 보이는 산꼭대기로 몸을 피해 있으라고 하지만 박씨는 이를 믿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거북은 요술을 부려 박씨를 매로 둔갑시키고 삼일간 아무것도 먹지 말고 산꼭대기에 앉아 있으면 좋은 세상을 만날 것이라고 타이른다.

거북의 말대로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자 갑자기 바닷물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거북과 왕자들은 용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런데 거북이는 산꼭대기에 있는 매로 변한 박씨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것을 보고 화가 난 거북은 다시 요술을 부려 박씨를 바위로 만들어 버린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오름을 가리켜 매오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함에 안겨볼까"
오름 찾아 떠나는 오르미들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 매주 오름을 오르는 이들이 있다. '오름오르미'(www.orumi.net) 동호회가 이들 이다. 제주 전역에 펼쳐진 오름을 거르지 않고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오름은 너무나 특별한 이상향이다.

오름오르미는 지난 1999년 오름을 사랑하는 교사 4명이 모여 결성된 동호회다. 현재 정회원 22명, 1일 회원 10여명, 온라인 회원 500여명이 활동중.

지난 18일 오르미들이 송당에 있는 안돌오름, 밧돌오름, 체오름을 찾았다. 기자는 이를 동행했다.

한껏 높아진 가을 하늘 아래 올망졸망 솟아 있는 오름들 사이, 넓디넓은 들판에는 오르미들을 반기며 억새가 춤을 추고 있었다.

안돌, 밧돌, 체오름은 송당목장 인근 높은오름과 다랑쉬오름을 마주하며 솟아 있다. 번영로(97번)와 비자림로(1112번)가 만나는 대천동사거리에서 송당리쪽으로 2.3㎞ 정도 가다보니 송당목장 입구가 나왔다.

송당입구 맞은편 비포장 길을 따라 900m를 먼지내며 달려 오른쪽으로 200m를 더 가자 안돌오름의 입구가 나왔다.

오름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며 수줍게 웃고 있었다. 작고 소박한 들꽃 이름을 부르며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한 오름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광활한 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름 주변 생태는 천연색의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오름의 생태는 더욱 성숙해지고 있었다. 그 어떤 미술작품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천연의 생태가 발하는 오름의 미(美), 그 것은 바로 예술이었다.

오름을 오르며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들풀엔 맘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동심과 서정을 이끌어 내는 마력이 있었다. 

이번 주말 오름 마니아들과의 동행을 추천한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오름을 호흡하며 일상에 지친 피로를 풀고 싶다면. 풍성해질 듯 싶다. 오름과 함께하는 주말이.

오름 오를 땐 우선 "겸손해야"

제주 오름은 알고 오르면 한 곳을 올라도 백가지를 보고, 모르고 오르면 백 곳을 올라도 한가지 밖에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미리 올라갈 오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오른다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오름이 작은 언덕 같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오름을 얕잡아 보고 올랐다간 오름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가쁜 숨을 몰아쉬기기 일쑤다. 그래서 오름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혼자 오름에 오르는 것도 묘미지만 초보자라면 여러 명이 오를 것을 권한다. 오름을 오르다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복장은 계절에 맞는 간편한 옷이 좋지만 짧은 옷은 피해야 한다. 

오름은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오는 것도 중요하다. 오름 정상에서 내려가고자 하는 위치의 등산로를 찾아야 한다. 잔디가 덮여 있는 오름이라면 이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잔디가 덮여 있는 오름이 아닌 나무나 풀이 무성한 오름은 다른 길을 개척하는 것보다 종전에 있는 등산로만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제주의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오름 주변에 농경지가 많다. 오름을 오르내리며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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