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제주지방조달청장>

   
 
   
 
요즈음은 회갑연을 하는 집안이 별로 없지만 공직에 처음 발을 디딜 때인 80년 초만 해도 직장동료의 어른신 회갑연에 축수하러 가곤 했다.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와 단간방에서 생활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회갑연은 대개 시골에서 하기마련이다. 가끔은 아들들이 생활하는 서울에서 열기도 하곤 한다. 초대받고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세월을 보고 야릇한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 자식들이 여럿이어서 60세에도 자녀들과 손자들로 왁자지껄한 광경을 보기도 한다. 집안에 형제와 친척들이 많지 않아 부럽기도 했다.

회갑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를 천간으로 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지지로 삼아 짝지어 돌아가면 1회전 하는데 60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를 1회갑이라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생애에 2회갑을 누리기는 불가능해 출생한 해를 맞이해 예로부터 축하를 드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조달청도 내년 1월에 회갑을 맞는다. 지난 60년은 정부수립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해방이후 혼란과 6·25 전쟁으로 폐허 속에서 나름대로 국가재정을 위해 버팀목을 해 왔다.

조달청이 처음 출발하게 된 계기는 해방후 미국의 원조물자를 받고 이를 국가재정에 보태쓰기 위해 만들어 졌다. 당시에는 국내 산업이 거의 피폐하여 세금을 걷기가 힘들었다. 전쟁 후에는 외자물자를 관리하기 위한 외자청으로 확대됐다. 50년대의 외자청은 제주지역에도 지방사무소를 설치해 수입된 비료를 농가에 판매하기도 했다.

61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에 따라 국내 물자의 구매공급을 중심으로 변화했다. 외자물자의 도입을 위한 구매계약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국내의 산업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국산 물자를 개발, 구매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쌀과 무연탄 수입이었다. 지금은 연탄을 사용하는 집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가정연료의 대부분이 연탄이었다. 국내 생산 무연탄이 부족해 연탄파동이 자주 발생했다. 외국에서 무연탄을 수입 공급해 연탄파동을 완전히 해소했다.

나이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80년을 전후로 해 계속된 흉년과 한파로 국내의 쌀 수급의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이 때 조달청의 구매관들이 전세계 식량생산국에 파견해 긴급구매에 나섰다. 당시에는 정국이 어수선하기도 했는데 온 국민들의 먹여 살릴 쌀이 제때에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더 큰 혼란을 초래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국내 생산되는 쌀이 남아돌아 오히려 걱정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지하철 개통, 주택 200만호 건설, 도로망 확충 등에 경제개발 지원을 했다. 조달행정의 획기적 변화는 전자입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IT 선진국이기도 하며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할 즈음에 전자입찰시스템을 개발했다. 처음 개발할 때에는 단순히 조달청의 업무편의 정도로 생각됐는데 정착됨에 따라 입찰, 계약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기업에 대한 지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에서 청구하는 조달물자대금은 요청에서 지급을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4시간이내에 전국 어느 곳에서도 지급하게 됐다. 지금은 UN 등 국제기구에서도 인정하고 있고 외국에다 시스템 수출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이 분야는 계속 발전하리라고 생각된다. 며칠 전 보도에는 휴대전화로 입찰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한다.

최근의 전세계적인 경제혼란의 와중에서 우리나라도 많은 어려움을 맞고 있다. 환갑을 맞는 조달청은 그 동안 축적된 경험과 재정집행관리 기능을 바탕으로 정부구매기능 확대를 통해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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