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숙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좋아하는 노래를 칭하는 '십팔번'이라는 낱말이 있다. 일본말에서 유래했고 술자리나 회식을 연상시키며 '남성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기 때문에 그 단어를 자주 쓰거나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내게는 무수한 십팔번들이 있다. 음악·음식·영화·책·장소·사람 심지어는 옛날 찍었던 사진 중에서도 십팔번 사진이 있다. 이를테면 즐거울 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기도 하지만 기분이 우울하거나 어두울 때 꼭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새로운 활력을 얻고자 할 때 몇 년 단위로 반복적으로 읽는 책이 있다. 이미 봤던 영화지만 그 내용과 장면을 또다시 느끼고파 먼지 쌓인 테잎이나 DVD를 들춰내는 경우도 있다. 한숨 쉴 일이 생기면 전화라도 걸어 목소리를 듣거나 직접 찾아가 얼굴 맞대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특정 장소를 일부러 찾는 경우도 있다.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낼 때 꼭 먹어야만 될 것 같은 음식도 있다.

비록 이러한 것들이 기쁠 때 보다는 슬프고 기운 없고 세상 살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 찾아지는 것들이지만 어쨌든 그것들을 접한 후의 나의 상황은 꽤 나아지는 편인 것 같다. 그리 돈 들어가는 것들도 아닌데 그것들로 인해 행복해지는 경우가 많다. 경제가 안 좋아진 이유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돈 버는 일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우리사회가 경제가 안 좋아졌다는 이유 때문에 일순간에 무너져 내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치를 둘 수 있는 것이 그게 전부는 아닐텐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회 분위기상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가하고 행복한 고민이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과연 그런 것일까. 난 내 십팔번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 힘내라고 어설프게 위로의 말을 건네 본다.

주말에 가족들과 아는 분의 농장을 방문했다. 이제 환갑에 가까운 그 농장의 주인아저씨는 자신이 소유한 조그마한 땅에 온갖 종류의 나무를 심어 놓았다. 숲을 가까이서 항상 보고 싶은 것이 그 이유였다. 아이들은 마당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도토리 줍기에 분주했다. "내게 저런 아이들 있으면 학교도 안 보낼거야. 이곳에서 같이 놀기도 바쁠 것 같아." 강아지와 어울려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 말씀 덧붙이신다.

그분 인생의 십팔번은 아마 나무심기와 가꾸기였을 것이고 그것이 인생의 최고 행복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곳에 자주 올까? 고구마 구워주신 아저씨 좋아?" 아이들은 "예"라고 우렁차게 대답한다. 우리집 꼬마들에게도 찾아가고픈 십팔번 장소가 하나 생겼나보다. 아직도 나는 끊임없이 내게 있어 십팔번일 수 있는 것들을 발굴중이다. 경제동물로만 살다가기에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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