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에 두 살씩 어머니 나이까지 내가 먹겠으니 어머니는 더는 늙지 마시라고...아들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어머니 잡수시며 그리도 일찍이 가셨습니까...”('사랑')

 해방 이듬해, 한 학년 전체가 70명이던 전남 강진군 한 시골 초등학교에 교장 아버지를 따라 전학 온 수줍음 많은 아이가 있었다. 늘 책만 읽던 그 소년은 학예회때면 시를 낭송하던 문학소년이었다. 명문 강진공립농업중학교에 진학했던 그 소년은 6·25때 의용군에 자원 입대했고 소식은 끊겼다.

 그로부터 5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소년 오영재는 초로의 모습으로 북한 최고의 서정시인, 계관시인이 되어 어머니의 땅에 왔다.꿈길에도 그리던 남북 이산상봉현장에서 그가 들고온 것은 눈물의 사모곡이었다. 떨리며 부모님 젯상앞에 바친 그 시는 온 겨레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차라리 몰랐더라면/차라리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해 버리셨다면/속고통 그리도 크시었으랴... 꿈마다 대전에서 평양까지 오가시느라 몸이 지쳐서...”('슬픔')

 95년 애타게 그리던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 썼던 그의 추모시 7편은 체제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모정임을 일깨우고 있었다.“망경대로 야유회를 갔을 때였다. 술에 흠뻑 취해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푸른 잔디밭에 뒹굴며 어머니를 찾아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던 시인은 그리움이 가기전에 한겨레가 통일이 되는 날이어야 한다고 절규했다.

 기막힌 통곡의 바다였다.그속에서 혼절하는 어머니가 있었다.한으로 생을 지탱하던 목숨들이 폭발한 뜨거운 눈물의 바다에서 허우적댔다.목숨 걸고 온 어머니들이었다.위암2기와 싸우는 어머니의 병마도 아들과의 상봉을 막지 못했다.99세 어머니가 치매라구? 그녀도 아들을 알아봤다.“어디갔다 인제 왔니?”북에서 온 8명 자식들은 90세 이상된 어머니를 부둥켜 안았다.“지금까지 널 보려고 죽지 못했다”는 애처로우나 강한 모정들로 한반도가 흐느껴야 했던 사흘간이었다. 그장면을 보면서 저 유명한 케텔 콜비츠의 목판화속 갖가지 표정의 그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남과 북의 200가지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이들 인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뒤의 공개안된 사모곡 사부곡 망부가.... 이산의 다큐를 생각했다.

 겨우 만났고,다시 긴 이별에 들어섰다.이산의 고통이 왔다. 차창안의 혈육과 차창 밖의 혈육들을 볼 것이다.차창밖의 어머니는 혼절할지도 모른다.반세기 가슴에 품은 사연들을 나누면서 생이별을 했다.또다시 이별한다는 것,그것은 고문임을 안다.

 지난 85년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북을 떠나던 날, 한 상봉자가 그랬던가."매달 보름달이 뜨면 7-8시 사이에 서로 남과 북의 달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자고 누이와 약속했다"고. 물론, 이번은 그때와 크게 따스한 분위기로 변화했다. 오랜 세월,인륜을 거역해야 했고,꿈길마저 거대한 암석으로 짓눌려야 했던...그런 고통앞에 행복해야 할 권리는 어디로 갔었던 걸까.

 이제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슬픔과 고통의 강물앞에서 분노를 느낀다.통일이 되는 날 까지 기다려줄 가족들이 어디 있겠는가.단 상징적인 만남만이 이러할 진대 만나지 못한 아픈 가족들이 모두 만날 수 있도록해야 한다.

 이제 반드시 상설면회소 설치와 서신왕래가 있게 해야 한다.이념을 넘어 이제 겨우 만나 이제 다시 헤어져야 하는 혈육,분단된 핏줄은 지구상에 우리 밖에 없다.

 이번 혈육상봉이 이산가족만의 문제이겠는가.분단시대를 살아가는 한겨레는 모두 분단의 마음,분단의 상상력을 갖고 있다.진정 마음의 이산부터 통일돼야 한다.감성의 눈물을 이제 닦고 냉정한 이성의 눈으로 보자.여야를 떠나 남북이 지혜를 모아 신뢰의 관계로 가야한다.한라가 백두를,백두가 한라를 오갈 수 있는 날,정겨운 혈육의 정으로 잡을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눈물로 모정을 찾던 순수의 얼굴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이별후의 상처가 더 깊을지 모른다.그러나 천륜과 인륜의 힘을 믿는다.어머니 눈물의 힘을 믿는다.그 눈물이 대지를 적셔 통일로 가게 되리라.분단된 핏줄은 지구상에 우리 밖에 없다.북의 시인이 어머니를 그리는 진실로 남북을 대한다면, 그날이 앞당겨지지 않을까.<편집부국장 대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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