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민이는 아버지가 양육하도록 하세요!”/“판사님,전 못 키웁니다.몸이 이렇게 온전하지 못해서.”/“엄마는 아이가 키우는 것이….”/“제가 어떻게 키워요?당신네 자식인데.난 못 키워요.애는 필요없어요.아버지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담임선생님은 몰라서 그렇지 나한테 뭘 기대하는지 모르겠어요.여자 선생님 수업은 들을 필요 없어요. 나 여섯 살 때 아빠, 엄마한테 버림받았어요. 아빠, 엄마가 법정에서 이혼하면서 나를 가운데 세워놓고 판사 앞에서 그렇게 말하며 나를 키우지 않겠다고 서로 싸우는 것을 난 봤어요.엄마는 죽어야 해요.엄마가 살아 있으면 안돼요.이 세상에 여자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여자 선생님 수업만 빠지지 않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중학교 2학년 형민이를,담임 선생님 부탁으로 만났다.

 여섯 살때의 그 기억이,엄마가 죽어야 한다는 증오감으로 형민이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유난히 엄마에게 적개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이 갖는 그 성질의 본질적 차이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곧 자궁내의 존재 어머니로부터 따뜻함,음식,갈증 만족과 안전의 유쾌함을 본능적으로 느낀다.모성의 근원이다.그 모성애가 성서에는 이렇게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약속된 땅(젖과 꿀이 넘쳐흐른다)은 어머니의 상징이다.젖은 사랑,즉 보호와 긍정 책임의 상징이다.꿀은 삶의 달콤함,삶에 대한 사랑이다.살고 있다는 행복감이다.어린이의 생명유지와 성장에 절대로 필요한 것은 보호와 책임이다.

 또 하나는 단순한 생명의 유지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 있다.이것은 어머니가 어린이게 삶에 대한 사랑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인간으로 남과 여로 태어난 것은 최고의 축복이며 존엄한 것이라는 감정을 갖게 하는 태도이다.본질적으로 어머니가 어린이의 퍼스넬리티 전체에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어머니가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형민이가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특히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그 참담한 느낌의 정서는 일생동안 형민이를 따라 다닐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성을,엄마가 아닌 여성,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과제인데,어쩌면 형민이가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왜냐하면 회복은 상처입은 시간만큼의 시간을 또 필요로 하니까.<제주여민회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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