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수(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2008년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주말 학교에서 어린이와 더불어 평생을 독서 교육을 해 오신 여희숙 선생님을 모시고 독서 강연회를 열었다. 자신을 책읽어주는 선생님으로 소개하면서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책 읽어라 하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몰래 몰래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책을 못 읽게 했더니 아이들이 궁금해 죽겠다며 책을 읽더라는 것이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독서 운동이니 책 잔치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일회적이고 보여주기 식 교육인지를 꼬집는 말씀처럼 들렸다.

우리 집 마루에는 책이 많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습관처럼 책을 사들이다 보니 이제는 어엿한 도서관 분위기가 난다. 책장 사이에서 자기를 봐달라고 손짓하는 책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서는 지금까지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때가 많다. 집안에서 아이들이 책에 파묻히게 만들고 싶었던 생각, 집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책이 있으면 아이들은 저절로 책을 읽게 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혼자만의 이런 행복한 상상은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점점 망상으로 변해 가는 것만 같다.

타인에 의해 강제로 주어진 듯한 책에 대한 인상은 아이들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으로 책을 바라보게 만들고, 책을 읽는 일이 마치 버거운 숙제를 하나 해치워야 하는 표정을 하게 만든다. 자기 주도적 책읽기가 빠진 자리에는 정말 지겹게 죽어가는 마지 못하는 책읽기가 들어서는 것이다.

또한 여희숙 선생님의 강연 중 가장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은 책을 혼자 읽는 것은 자기 혼자 잘 생각하고, 잘 나갈 수 있지만 함께 읽어 토론하는 것은 타인을 끌어당기는 책읽기가 된다고 말씀 하신 대목이다. 토론을 어려운 말싸움 정도로 생각해 오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20여 년 간 해 오신 교실 토론 수업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는데 짧은 시간이라 아쉬웠지만 선생님이 쓰신 <토론하는 교실>을 통해 꼭 토론 수업의 참 맛을 느껴보고 싶다.

토론은 6단계가 있다고 한다. 처음은 주제를 정한다. 둘째는 그 주제에 대한 결론을 밝힌다. 셋째는 결론을 말하는 이유를 대야 한다. 넷째는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상대방의 반론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핵심 주장으로 반론을 꺾을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는 총정리를 하면서 대안과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6단계에 관한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그런데 가장 핵심적이었던 내용은 혼자 책 읽는 아이들은 4단계까지만 할 줄 아는 사람은 논리적인 사람이 된단다. 5단계에서 반론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알고 반론 꺾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란다. 6단계 정리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창조적인 사람이란다.

나는 지금 어느 계단에 서서 아이들과 책을 읽었는가 깊이 되새겨 본다. 더불어 여러분은 어느 계단에 서서 책을 읽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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