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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고작가 지상전 <2> 연농 홍종시
문정임 기자
입력 2009-01-04 (일) 15:59:30 | 승인 2009-01-04 (일) 15:59:30

   
 
  故 홍종시  
 

故 홍종시(1857~1936)는 7월 8일 제주성내에서 홍재수의 아들로 출생했다. 자는 중립(中立), 호는 연농(硏農)이다.

1898년 제주에 유배 온 외부(外部)대신이면서 석학(碩學)이었던 운양 김윤식에게 사사했다. 홍종시는 김윤식이 조직한 시회(詩會) '귤원'의 동인이 돼 그의 가르침과 소장한 서책(書冊)으로 학식과 견문을 넓혔다. 이때 홍종시는 제대가(諸大家)의 서법론을 배웠으며 추사필법에 능하였다.

세간에서는 '추사 서법에 있어 입신의 경지에 들었다' 고 칭하였다. 홍종시는 특히 난초 그림에 뛰어났다. 심성이 강직하고 바르며 항상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온화하여 제주도를 찾은 정객, 시인묵객, 유배인들과 교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에는 홍종시에 대해 "제주인으로 추사체 글씨를 잘 썼다. 한때 병풍, 족자, 주련(柱聯) 등의 글씨는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故 홍종시 작. '죽란 팔곡병'  
 

   
 
  故 홍종시 작.  
 

   
 
  故 홍종시 작.  
 

   
 
  故 홍종시 작. 삼성혈 건시문 편액.  
 
김윤식의 저서「속음청사」에 김윤식이 홍종우를 처음 만나고 난 뒤  '집에 많은 서화(書畵)를 갖추고 있어 가히 그 풍아(風雅)한 인품을 알 수 있었다' 고 쓴 기록이 있고, 또한 같은 책에 '1901년 이재수가 대정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제주성을 함락시키려고 하자 제주성에 있었던 홍종시와 송대정이 급히 어디론가 피신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윤식과 매우 가까이에서 교류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8월, 이미 알고 지내던 개화파이자 내무대신이었던 박영효가 제주에 유배 오자 홍종시는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개화사상을 받아들였다. 이에앞서 1898년 1월 일본에서 박영효를 암살하려던 이일식이 제주에 유배에 와도 가까이 하지 않았고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가 제주목사로 부임해도 그와 상종하지 않았다고 한다.

홍종시는 또한 석촌 윤용구, 몽인 정학교, 무정 정만조, 만오 이강, 위창 오세창, 해강 김규진, 의제 허백련 등과 교유(交遊)하였다.

홍종시는 1905년 제주향교 도훈장, 1917년 제주금융조합장, 3·11운동 직후 제주면장을 거쳐, 1931년 제주면(面)이 제주읍(邑)으로 승격되자 초대 제주읍장(현재 제주도지사)을 지내다 3년만에 이를 사임했다.

전해오는 대표 작품으로 제주시 삼성사의 건시문 편액, 외도의 월대비, 한림읍 명월리의 명월대비, 추사선생적려유허비 등이 있다.

저서로는 「완당선생서법총론」 「고문직보초」 「연농수묵」 「하장경순첩」 「구서법파비」 「미수선생전동해비」 등이 있다.   <정리=문정임 기자, 미술평론가 김유정>

편집자 주> 제주작고작가 지상전은 태어난 순서로 게재합니다.

문정임 기자  mungdang@hanmail.net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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