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경(제주외고 논술교사)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한 해를 새로 맞이하는 시기에 나는 '딸'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얻었다. 아무리 표현하려 해도 새 생명을 세상으로 불러내는 일의 고통스러움은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딸아이를 키우는 행복함은 그 고통의 몇 배라는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이제 나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

24시간 동안 진통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힘 빼세요"였다. 힘을 주기만 하니까 태아의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산모의 고통도 더 커지기만 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힘을 잘 줘야한다'는 충고를 수십 차례 들었지만, '힘을 잘 빼야 한다'는 충고를 들은 기억이 없어서 간호사들의 "힘 빼세요"라는 소리가 너무 낯설었다. 낯설 뿐만 아니라 힘을 어떻게 빼야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어딘가 아프면 당연지사 온 몸에 힘을 주게 된다. 그러니 온 몸으로 고통을 느끼는 나에게 힘을 빼라니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힘을 주라면 이를 꽉 깨물던지, 주먹을 불끈 쥐던지, 발가락에 힘을 빡 주던지 하겠는데 힘을 빼라는 건 꼭 의식을 놓으란 소리처럼 들려서 무섭기까지 했다.  '오! 신이시여~ 정녕 힘 빼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그래서 나는 우습게도 힘을 빼라고 다독이는 간호사를 향해 "힘은 어떻게 빼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가 "아무 일 안 생기니 그냥 팍! 놓으세요! 그냥 팍!"

아무 일도 안 생긴다는 간호사의 말에 그냥 한 번 '팍' 힘을 뺐더니, 놀랍게도 고통도 덜 하고, 아기의 심장 소리도 좋아지고, 게다가 잘 한다고 칭찬도 받았다. 그렇게 어렵게 힘 빼기를 익힌 몇 시간 뒤에 나는 딸의 건강한 울음 소리를 들었다. 

사람은 큰 일을 겪을 때마다 세상의 커다란 가르침을 얻는다더니 나는 딸을 얻으면서 '힘 빼기'라는 세상의 가르침을 함께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지위와 역할에 걸맞기 위해 고민한다. 부모답기 위해, 선생님답기 위해, 사장님 혹은 회장님답기 위해, 국회의원답기 위해, 대통령답기 위해! 그런데 그 고민의 대부분은 힘 주기와 연관된 것이다. 그러니 갈등과 불신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힘 빼기의 가장 큰 적은, 힘을 빼면 꼭 나를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인 것 같다. 그러나 힘 빼기의 기본인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상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냥 한 번 "팍"하고 힘을 빼보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과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기 주장만 하느라 온 몸에 힘이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이여!   "그냥 한 번 팍! 힘 빼세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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