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젊은 기개 화폭에 남겨
추자도 출신 제주공립농고 1호 졸업생 기록 불구 도일 후 미술 전념
즉흥적이면서도 빠른 손놀림, '잉어'주제 능해…29세 요절 아쉬움

故 원용식은 1898년 추자면 대서리에서 출생했다. 호는 해주(海洲). 1927년 요절할 때까지 29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화가다.

원용식은 1919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 추자면 출신 1호 졸업생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우에노미술학교(上野美術學校)를 수료했다. 일본에서 개인전을 가졌다고 하나 자료가 없어 가늠할 길은 없다. 우에노미술학교 졸업후에는 중국에서 활동 하다 한국으로 들어와 호남, 장흥, 남해안 도서지방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확인된다.

 

   
 
   
 

1925년에는 추자면에 있는 최영장군사당에 '최영대장신사'(사진)라는 편액을 쓰기도 했다. 추자면의 최영장군 사당에는 원용식이 그린 소나무 그림이 현판 우측에 붙어있다. 매서운 바닷바람에 희미해진 먹빛의 소나무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는 듯하다.

이후 원용식은 서울에서 활동했다. 산수·사군자·화조도에 능했고, 특히 잉어를 화제(畵題)로 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작품 가운데 '설경' '흑매' 등이 제주에 개인 소장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묵죽도'와 '난' 등 원용식 작품 2점은 현재 제주교육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묵죽도'(사진)는 빠른 붓놀림에 의해 즉흥적으로 그린 듯이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데 농묵(濃墨)과 발묵(發墨)의 운용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대나무가 바람의 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드럽게 넘기는 지혜를 원용식은 알았던 것일까.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나무의 꼿꼿함이 젊은 원용식의 기개처럼 오롯이 서 있다.

 

   
 
   
 

'난'(사진)은 우아하고 빼어난 기품을 느끼게 한다. 바위틈에서 향기를 내뿜는 난초의 고고함은 거침없이 호방한 원용식의 필치를 담고 있다.

안타깝게도 29세라는 그의 짧은 생애는 그의 완숙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가족으로는 여동생이 서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을까.

미술평론가 김유정. 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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