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 (제주도여성특위 여성사정립분과위원장)

지난 한해 나는 고민 속에 빠져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에 대해 자꾸만 되새겼다. 물 흐르듯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또 다시 얻게 된 한 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까. 한 살의 보탬으로 반백을 맞이하면서 나는 사춘기도 아닌 나이에 새삼 불면의 밤을 반복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사랑만을 믿고 겁 없이 살림을 시작하였던 시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목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욕심에 힘들어했다.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것도 서러운 것도 참 많았다. 가족이나 이웃들과의 다툼도 빈번했다. 내가 우선이다 자존심을 세웠지만 내가 최고는 아니었다. 돈 때문에 절절했었지만 빈한함은 여전했다. 오로지 피끓는 나이의 공허한 외침과 내면에 숨어있는 초라한 자격지심만이 나의 전부였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에게 여유가 생겼다. 내가 아닌 남들이 나를 챙겼다. 내 눈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 온기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존재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알았을 때 그래서 그들을 세상의 필요 존재로 받아들였을 때 이상하게도 금전적 아쉬움마저 사라졌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사는 세상에 최상의 정도가 어디 있을까. 각자의 능력과 조건에 순응하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숭배하는 이는 사랑을 위해, 부(富)가 최고인 사람은 물질적 가치를 위해, 그리고 자식이 전부인 사람은 자손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으면 안되겠다. 자신의 사랑이 자신의 부(富)가 그리고 자신의 자식이 소중한 가치 추구의 대상일지라도 다른 이의 마음은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목표는 다를지언정 심성에 흐르는 맥(脈)은 변함없이 하나로 모아짐이 인간사임에야. 
     
세상에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 가족과 이웃은 물론 설사 나와는 상관없는 모르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지구상에 그들은 유일한 존재이다. 살아가다보니 사람보다 더 귀한 게 있으랴 싶다. 또 한 살의 나이를 먹으며 새삼 다시 느끼는 내 나름의 진리라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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