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희망을 쏜다] 6. 외국인 노동자 파흐미씨

▲ 인도네시아에서 온 파흐미씨(왼쪽)가 제주이주민센터에서 마련한 오토바이 정비교육을 받고 있다.

태어난지 7개월 아들 한번도 직접 보지 못해…매서운 겨울·입에 안맞는 음식·배타적 문화에 맘 고생
일요일 쪼개 오토바이 정비 교육 받는 등 착실한 미래 준비 "돌아갈 날 늦춰졌지만 마음만은 든든해"

외국인 노동자 파흐미씨(33)에게 휴대전화는 안식처다.

그는 휴대전화를 손에 달고 산다. 일하다 쉬는 시간에도, 잠을 자기 전에도 그는 매번 휴대전화를 보고 만지며 환하게 웃는다.

잠깐 들여다본 휴대전화 초기 화면에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아내 이인 인드라와디씨(24)와 7개월된 아들 지훈 줄리아노가 웃고 있다.

PC방에서 인도네시아 가족들과 화상채팅을 하다 휴대전화로 찍었다는 사진은 화질이 좋지 않아 명확히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에겐 '보물'과도 같다. 

태어나 7개월이 될 때까지 한번도 아들의 얼굴을 만져보지 못했다는 그다.

이국의 매서운 겨울 날씨가 고역이기는 하지만 아들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파흐미씨는  "아들 생각만 하면 한달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아직 (인도네시아로)돌아갈 수 없다"며 "한국에서 돈도 많이 모아 당당하게 돌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돈'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지난 2005년.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아내만 고향집에 남겨둔 채였다.

 한국에 온 그는 제주에 있는 석재가공업체에 취업했다. 돌을 만지고 도로 사이에 경계석을 다듬는 일은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적성에 맞았다.

그러나 음식을 비롯해 제주의 날씨며 문화 등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첫 해 겨울은 추워서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추운 것 쯤은 양말을 서너겹씩 껴 신으며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말을 모른다'며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속앓이를 했던 기억은 상처로 남았다.

여기서는 매번 식탁에 오르는 김치는 냄새는 물론이고 맵고 짠 맛 때문에 파흐미씨의 제주 생활을 어렵게 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이 송금해준 돈으로 생활하는 인도네시아 가족들을 떠올리며 약한 마음을 다시 잡았다.

이젠 먼저 김치를 찾을 만큼 그는 제주 사람이 되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된장국'이다.

제주가 익숙해지면서 표정도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AJOY(제주안에 인도네시아)'라는 모임을 결성, 회장을 맡을 만큼 적극적으로 변했으며 제주이주민센터에서 주관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귀국정착 프로그램'인 오토바이 정비교육에도 열심이다.

일이 능숙해지면서 그는 체류기간을 2010년으로 연장했다. 고향에 돌아가는 날이 늦춰졌지만 마음만큼은 든든하다.

일을 하지 않고 쉬는 일요일 시간을 쪼개 매주 오토바이 정비 교육을 받는 것도 귀국 후 고향에서 오토바이 대리점을 열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아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는 그는 "한국에서 힘들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앞으로의 계획이 세워진 만큼 돌아갈 때까지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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