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토착문화를 남달리 사랑했던 예술가
'고집 부리지 말고 남들처럼 삽써' 란 말에 역정
교직생활과 함께 제주 문화예술 중흥에도 앞장

   
 
  故 홍정표 선생.  
 

"오랫동안 공직 생활 하시면서 집  하나 장만 못하는 선친의 무력을 원망해본 적도 있지만 지금은 '고집부리지 말고 남들처럼 삽써'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역정을 내시던 선친의 가르침을 이해한다" 故 홍정표의 아들 故 홍성선씨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홍정표는 지난 1907년 제주시 이도 2동에서 4남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만농(晩農), 혹은 영주주인(瀛州主人).  연농(硏農) 홍종시의 손자이기도 하다.

홍정표는 제주공립보통학교(현 제주북교)와 제주농업학교, 전남도립사범학교(광주사범전신) 강습과를 졸업했다.

그의 인생행보는 교육가로서 먼저 시작됐다. 1926년 조천공립보통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35년에는 상경, 경기도와 서울등지에서 초등학교 교사, 교장으로 재직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제주로 귀향했다. 1981년 퇴임전까지 제주농고·제주사대부고·오현고·제주일고 교장과 제주도교육연구원장, 제주간호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홍정표 작 '투작도' (1960년로 추정, 개인소장)  
 

   
 
  홍정표 작 '주마도' (개인소장)  
 

1953년 귀향한 홍정표는 이때부터 제주도 토착문화에 관심을 갖는다. 10여년간 제주도 전역을 돌며 사라져가는 제주문화의 생생한 현장을 사진에 담았다. 1964년에는 서울 중앙공보관, 수원문화원에서 전시회를 개최, 제주문화의 독창성을 육지에 알렸다.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 사진으로 보는 제주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후문이다.

제주도 노동요 130여 편이 실린 그의 저서 「제주도민요해설」 은 제주도 전통음악 연구의 밑거름이 되는 책으로 삽화 또한 자신이 직접 그리는 열정을 선보였다.

 

   
 
  홍정표가 그린 삽화.  
 

홍정표는 제주 문화예술계의 중흥에도 앞장섰다.

그는 1967년에는 제주도미술관을 개관한다. 다방 외에는 전시공간이 없었던 제주도에 문화공간을 마련키위해 직접 일본으로 건너 가 관계자를 만나는 등 노력을 기울이나 일이 무산되자 자신의 가재를 털어 미술관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는 미술·문학·서예·사진·민속 등 예술 전 분야에 걸쳐 제주예술의 기초를 닦았다. 제주문학협회 초대회장·영주연묵회 초대회장·제주산악회 초대회장과 제주미술관 초대관장, 제주사진협회 창립 등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 담긴 그의 지나온 족적이다.

 

   
 
  홍정표의 필적.  
 

   
 
  홍정표가 쓴 가훈.  
 

홍정표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녹조소성훈장·제주도문화상·민족문화유산보존공로감사장 등을 수상한다.
지난 1992년 홍정표가 사망하자 유족들은 그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그가 보관중이던 사진 일체를 제주대박물관에 기증했다. 그가 기증한 사진들은 제주 문화를 연구하거나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다큐멘터리 사진들로, 제주대박물관에서 연달아 발행,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김유정
정리=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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