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소설가)

신구간 기간에 들어서, 골목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난다. 위풍도 당당하게 지나는 대형탑차에서 추레하게 덮인 비닐포장새로 손때 묻은 세간 귀퉁이를 드러내 보이며 가쁘게 굴러가는 소형트럭에 이르기까지, 이사행렬은 진종일 이어진다.

그 중에는 형편이 나아져 좀더 넓은 집으로 들어가는 차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세간을 줄이고 줄여 작은 집으로 들어가는 차도 있을 터이다. 목적이 어디든, 세간이 빠져나간 자리는 텅 빈 구강처럼 헛헛해 보인다.

얼마 전, 이사 간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가계빚 때문에 해마다 조금씩 싼 집으로 옮기더니 아예 무상임대해주는 벽지 촌가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왕래하는 차편이 변변치 않음은 둘째 치고, 시골에서 살던 사람도 도심으로 나오는 마당에 가족이랑 친구들을 떠나 벽촌으로 들어간다는 게 속상해 꼭 가야겠냐고 한소리를 했다. 친구는 나의 채근에 아무 대답 없이 작은 한숨만 쉬었다.

지나다 들려보니 이미 친구의 집은 텅 비어 있다. 미처 챙기지 못해 떨어져 뒹굴고 있는 집기 위를 기어 다니는 달팽이를 보며 긴 생각에 잠긴다. 달팽이처럼 제 몸 하나 들어갈 공간이면 충분할 것을, 괜한 욕심 부리며 바동바동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애써 돌리는 발길 위로 하나둘 도심의 불빛들이 점등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도심을 채우는 휘황한 불빛들을 둘러보다 문득 날 기다리고 있을 불빛 하나가 그리워졌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켜 놓았을 불빛을 떠올리자 얼었던 가슴에 따스한 기운이 스미는 것 같다. 황망하고 신산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가 밝히는 등불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기에 어두워지면 피곤한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는 모양이다.

그래, 어딘가를 떠난다는 것은 또 다른 어딘가로 돌아간다는 것일 게다. 낯선 곳으로 돌아간 친구는 새로운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예전엔 냉기와 어둠뿐이었을 빈 집을 따스한 등불로 채우고 돌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화를 끊으며 그래도 공기 좋은 곳에서 새소리는 실컷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크게 웃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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