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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사회/복지 2009 희망을 쏜다
"제주에서 얻은 '희망' 은 살아가는 힘"제주121전투경찰대 이정훈 상경
인도네시아 영주권 포기 제주서 국방의 의무…'한국인'으로 해야할 일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존재 보람…전역 후 가족 위해 최선다할 터"
김동은 기자
입력 2009-01-28 (수) 18:40:17 | 승인 2009-01-28 (수) 18:40:17
   
 
   
 

군입대를 피하려고 온갖 편법을 쓰고 심지어 국적까지 포기한 일도 허다한 요즘, 거꾸로 군대에 가기 위해 제주에 온 젊은이와 만났다.

군대 입영 통지서를 받는 순간 무의식중에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해야 할 일"이라는 자부심에 힘이 났다고 했다.

가족, 친구들 등 익숙한 사람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생활을 해야 하는 부담감과 '과연 2년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그는 어떻게 이곳 제주까지 왔을까.

설 연휴 비상 근무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참이었지만 제주 121 전투경찰대 이정훈 상경(24)의 모습은 다부졌다.

'어떻게'라는 질문에도 "우리나라 남자라면 당연히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군대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대단하다.

이 상경은 일부러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속칭 '신의 아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지난 1998년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뒤 줄곳 그곳에서 컸다. 만 18세가 되던 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영주권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큰 고민 없이 포기했다.

영주권만 받으면 군대 걱정도 덜고 집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한국인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지난 2007년 이 상경이 군입대를 결정했을 때도 "잘 생각했다"는 격려보다 "혼자 먼데서 어떻게 생활하겠냐"는 걱정이 먼저였다.

평소 말이 없던 무뚝뚝한 아버지가 추운(?) 곳에서 어려움을 겪을 아들 걱정에 보약을 지어왔을 정도였다.

부모와 주변의 걱정과 달리 이 상경의 속내는 깊었다. 이 상경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춘기를 보내면서 부모님 속을 많이 썩혀 드렸다"며 "정신을 차리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군대에서) 잘 할 자신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대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던 인도네시아에서의 습관은 생각보다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더운 나라에서 살다보니 찬바람만 불어도 겁이 날 정도였다. 게다가 사투리에 속도가 빠른 선임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 "한국어도 모르냐"는 타박도 감수해야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고 운을 뗀 이상경은  "난생 처음 직접 옷도 빨고 청소도 하면서 '왜 여기까지 와서 이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갈등도 많았다"며 "조직문화도 익숙치 않고 규율을 지키는 것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이 상경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고 남이 해주길 기다리던 것이 이제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특히 의경 생활은 사회와 밀접해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했다. 군 입대후 꼭 한번밖에 보지 못한 가족들이 그립지만 지금의 생활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 상경은 "TV 등에서 본 현역 군인의 모습이 익숙해서인지 '의무경찰'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며 "지금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띄이는 존재가 됐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또 "전역하면 그동안 잘 해드리지 못한 부모님께 효도할 생각"이라며 "제주에 와서 너무 많은 것을 얻어 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동은 기자  kdeu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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