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굣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때다.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든 게 화근이었다.  예정된 정류소를 한참 지나서야 눈을 떴다. 머릿속이 순간 백지가 됐다. 어떻게 학교를 찾아간담? 1교시 수업중일텐데….오만가지 걱정과 불안감으로 종종걸음이 더 급했다.

비오는 거리를 마냥 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학교에 겨우 도착했으나, 교실 들어가기가 겁이 났다.

선생님께 혼나는 게 두려웠다. 교실 밖에서 맴만 돌았다. 드디어 1교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나오셨다. 수업을 빼먹은 학생을 향해 선생님의 고함이 터질 듯 했다. 그런데 왠일일까. 선생님이 학생 이름을 부르며 다급하게 달려오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학생은 이유도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런 학생을 선생님은 품에 꼭 안아주셨다. 선생님! 어떤 사람에게 교사의 존재는 등불과 같다. 교육이 백년대계면, 교사는 학생을 백년대계로 이끄는 스승이다.

그런 스승상이 최근 금이 갔다. 대기고의 고입시험 부정행위가 그렇다. 대기고가 우수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해 수험생 점수 낮추기를 종용했다. 대기고의 신입생 유치 편법 동원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고, 도교육청은 대기고에 제재를 가했다. 대기고 교장과 제주도교육청 교육감이 공식 사과와 재방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기고의 한 교사가 언론기고를 통해 이의를 제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교사는 대기고의 수험생 점수 낮추기 종용은 교사의 현명한 지도며, 제주사회 관련 논의가 특정학교를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교사의 기고를 읽으며 기자는 내내 황당했다. 제주 교육제도의 허점을 악용, 정당한 경쟁이 아닌, 학교이기주의와 과도한 경쟁심을 유발시키며 신입생 유치에 편법을 동원한 학교의 처사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교육제도는 약속이다. 교육자로서 양심과 책무성을 저버린 행위를 놓고 현행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육자의 양심은 어디로 갔는가. 

[도내 모 일간지 인터넷 뉴스에 올라온 기고] 고입,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시험을 망쳐 점수를 낮추어야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금년도 제주시 연합고사 인문계고교 입시 후 화두가 되고 있다. 소가 웃을 일이 벌어지는 것은 새로 시행된 각 학교급간별 경쟁제도라는 고입제도에 기인한다. 이 제도는 1~4지망까지 학교를 선택하고 시험을 치른 뒤 3120명을 선발한 후 석차 순으로 1~9등급을 분류한다. 이것을 정해놓은 학교 등급별 정원에 따라 경쟁 배정하는 퍼즐 같은 제도다.

2007년 지원현황을 이 제도에 대입하면 문제점이 발생한다. 몇 가지만 보자.

첫째, 전체 경쟁률은 미달이나 1등급 경쟁이 높은 D고교에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1등급에 해당하는 학생은 시험을 망쳐 등급을 낮춰야 입학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8, 9등급은 미달이니 전원 합격한다.

둘째, 전체 경쟁률은 높으나 1등급이 미달인 B학교에 지원한 상위권 학생은 전원 합격하지만 8, 9등급은 경쟁이 치열하여 엄청 많은 학생이 탈락한다. 불행하게도 이 아이들은 등급을 조정할 능력이 없다. 평준화제도에서 잔인하게 기회의 차별을 받는 것이다.

셋째, 현행 제도에서는 전체 경쟁률 발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동일학교라도 급간에 따라 경쟁률이 엄청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교 선택권을 주는 제도에서 배정이 끝난 후에도 1지망 학교의 급간 경쟁률도 알 수 없고 자신이 속한 급간도 알 수 없다. 수험생은 왜 자신이 1지망 학교에 탈락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넷째, 'D고는 상위 등급 학생이 많이 지원하므로 등급이 낮으면 D고에 배정될 확률이 높다' 는 홍보를 했다고 당국은 관련자 징계를 요청했고 제도를 잘 모르는 언론은 현상만을 보도하고 있는데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금년도 제주과학고의 경쟁률은 4.5:1인데 이 학교가 현행 연합고사입시제도로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하고 경쟁률이 1등급 3:1, 3등급 0.5:1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1등급에 속하는 학생이 입학을 바라고 있다면 1등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라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조정하여 3등급이 되는 것이 입학 가능성이 높다고 지도한 교사가 현명한 교사인가.

결론을 말하면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현상적 상황만으로 특정 학교를 매도함으로써 불공정하고 차별적이며 상위권 나누기 고입제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시대에 역행하는 제도로는 경쟁할 수 없고 희망이 없다. <허태식/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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