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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고작가지상전> <10> 일석(一石) 장희옥깊이 있는 수묵 통해 희망을 그리다
부평초 같은 삶 전쟁 상흔 불구 다섯 차례 개인전
험난했던 시대상황 인간애 담은 붓 끝으로 옮겨 내
문정임 기자
입력 2009-02-04 (수) 18:41:56 | 승인 2009-02-04 (수) 18:41:56

   
 
  故 장희옥(중앙)은 부인 이경숙씨와의 사이에 1남2녀을 두었다.
 
 
1957년 장희옥의 첫 개인전이 열린다.

당시 제주신보는 “불완전한 준비로서 대중 앞에 내보인 점, 재료 구입의 어려움 때문에 나상(裸像)을 그대로 보인 점, 협조자 없이 혼자 전시를 준비한 점, 갱지에 예술의 본바탕을 정열로 그려 보인 점” 등을 들어 그의 예술에 대한 정열을 높게 평했다. 

그는 일본으로의 도항, 전쟁중 징집, 빈번한 이교 등 평범치 않은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수묵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순간에도 놓지 않았다.



   
 
  장희옥 작 '매죽도'  
 


장희옥은 1918년 제주도 제주읍 용담리(옛 주소)에서 태어났다.

1938년 동경제국미술학교 일본화과에 입학, 4학년이 되던 해 중퇴했다. 그의 일본유학은 1930년대초 일본에서 화물선업을 하는 아버지를 찾아 일본행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장희옥은 1944년 당시 열여덟살이었던 이경숙 여사와 결혼해 오사카 근교에서 살았다. 결혼 직후 군대에 징집됐다가 일본이 항복하면서 급거 제대, 해방 후 고향 제주에 돌아왔다.

 

   
 
  장희옥의 필체.  
 


장희옥의 삶은 때로 부평초(浮萍草)에 비유된다. 그는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동경제국미술학교 졸업증명서가 없던 그는 같은 학교 출신 동료들의 보증으로 간신히 교사 자리를 얻었다. 때문에 보인상고, 의정부 농업학교, 서대문에 자리한 모(某)상고, 춘천교대,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를 빈번히 옮겨 다녀야 했다.

1949년 장희옥은 졸업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일본에 들어가지만 밀항이 탄로 나면서 서울에서 교편을 잡기 어렵게 됐다. 이듬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앞서 그랬던 것처럼 고향을 찾는다.

장희옥의 작품은 매우 '이단적인 색채'를 띤다. ‘누드’ ‘동란’ ‘환자’ ‘寒夜의 乞人’ ‘ 삶’ 등 그는 인간애적인 시선으로 전쟁 등 시대상황을 바라본 작품을 선보였다.

1988년 타계할 때까지 장희옥은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가 처한 어려운 여건을 감안한다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즉석에서 풀어낸 수묵화들은 그가 섬 땅의 대중들에게 베풀 수 있었던 가장 행복한 선물이면서, 삶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었다.


문정임 기자  mung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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