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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고작가지상전> <11> 서양화가 양인옥순수 제주를 닮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 영향…독특한 빛 처리 감각 등 유화의 부드러움 끌어내
정적인 인물 설정 등 사실 주의 고수, '국전 스타일'입상경력 화려
문정임 기자
입력 2009-02-11 (수) 18:16:15 | 승인 2009-02-11 (수) 18:16:15

   
 
   
 

"그의 작품세계는 밝고 따뜻한 색조로 아늑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이다.…각종 공해 속에서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어머니 품에 포근히 안긴듯한 정감을 준다"

1981년 당시 남양미술회관장은 고향 제주에서 열린 양인옥의 두번째 개인전을 이렇게 평가했다.

서양화가 故 양인옥은 제주출생이지만 그의 활발한 붓놀림은 진도를 배경으로 한다.

3남5녀중 2남으로 13세 때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양인옥은 시나노바시 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공예학교를 거쳐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부에 진학, 사이토 요리·구루미사와 센토 교수에게 사사하는 등 당시를 기준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오사카미술학교 시절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흠모한 양인옥은 그 영향을 붓끝으로 표현했다.

 

   
 
  '나부' (1988. 기당미술관 소장)  
 

   
 
  '상'(1989. 광주시 소장)  
 

   
 
  '초가' (1985.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소장)  
 

   
 
  '오후' (1960. 광주시 소장)  
 

   
 
  고인의 생전 작업 모습.  
 


양인옥은 유화를 즐겼으며  누드에 대한 애착은 1980년 초부터 작고할 때까지 지속됐다. 발랄한 색채는 풍경화에서도 현란하게 빛을 발했다. 빛의 흐름, 빛의 각도의 표현은 진정 렘브란트의 변형이었다.

빛을 사랑했던 그였던 만큼 제주에서 작품활동하지 않은 점에 의문을 던질수도 있다.

양인옥은 해방 이후에도 졸업을 위해 2년간 일본에 머물렀고 고향 제주로 돌아온다. 계속해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광주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벽파진에서 불심검문에 걸리는 '사소한'일을 계기로 진도에 정착했고, 1999년 타계할 때까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활동했다.

작품 활동을 한 곳이 제주가 아닌 것은 그의 작품 세계에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남도미술 100년전' 출품되고 1998년 오지호미술상을 수상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양인옥은 전라남도 미술계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1963년 목우회 공모전 최고상 수상을 비롯,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국무총리상과 문교부장관상 등을 수상하고 열 두 차례의 입선과 네 차례 특선 등 국전을 중심으로 한 입상 경력이 화려하다.

이는 그의 작품이 이른바 '국전스타일'로 불리는 경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정적인 포즈로 오로지 화면 구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의 작품에는 목우회 경향이라고 불리는 사실주의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양인옥은 대통령 면러포상(1960), 전라남도문화상(1965), 유엔 세계예술평화상(1985), 금호문화상(1991), 국민훈장 목련장(1996) 등을 수상하고 호남대 학장 및 총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미술계 발전을 위해 노력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유정
정리 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문정임 기자  mungdang@hanmail.net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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