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건강함으로 제주 그려
강렬한 색채, 굵은 필선으로 이국풍 원시성 가미된 작품 특징
현대미술방법론 소개·미술평론 등 제주 현대 미술정착 기여

   
 
   
 

제주를 그냥 화폭에 담기에 화가의 개성은 너무도 강했다. 거친듯하면서도 대담하고 굵은 필촉은 투박함이 매력인 제주를 닮았다. 건강함이 묻어나는 색채는 개성의 해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작품을 통해 화가 조영호는 깊고 거친 바다를 푸르고 잔잔한 남빛으로 다스렸다. 고된 노동 탓에 표정을 잃은 주름 깊은 해녀는 서글서글하고 보기좋게 그을린 건강한 여인으로 숨겨진 매력을 발산한다.

자연과 인간의 원시성을 강조한 화가 조영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고갱으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주의적 특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따스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던 작품 면면에서 낭만주의 화풍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조영호 화가는 서울에서 30여년을 살다 고향으로 돌아와 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말년 제주에서의 생활은 '삶은 낭만이 아닌 현실'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활에 치여 고향으로 내려온 뒤  '눈딱 감고 몇년 돈을 좀 모아 본격적으로 그림그리는 데 몰두하겠다'던 화가의 현실은 채광 좋은 화실이 아닌 시내버스 종점 식당이었다.

조영호 화가는 1927년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18세 되던 해 3년과정인 일본오사카시립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해방이 되자 故 김광추·박태준 등과 함께 귀국,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1948년 1년 선배였던 박태준과의 첫 유화전을 열었던 그는 1953년 제주미국공보원이 주최한 제2회 학생미술전에 '용수' '물 긷는 소녀' 등 제주 풍경화들을 출품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55년에는 제1회 미술협회전에 인상파적 사실주의풍의 그림 '심연(深淵)' '늦은 여름' 등을 선보인 데 이어 제주시내 오아시스 다방에서 유화전을 가졌다. 2년후에는 관덕정에서 '여인상' 등 양화 47점으로 다시 개인전을 열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했지만 그의 대표작은 '제주'와 연결된다.

   
 
  故 조영호 작 '해녀들의 휴식'(개인소장)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심연(深淵)'이나  '늦은 여름'  '여인상'  '풍경'  '해녀'  '물 긷는 소녀' 등은 제주가 소재거나 제주에서 그려졌다.

섬의 풍물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를 추구했던 조영호는 해녀의 건강한 원시성을 담아내기 위해 이국적인 취향의 원시주의 정서가 담긴 작품을 남겼다. 제주의 풍경을 보라파적인 인상파 화풍으로 해석하면서 자연을 예찬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는 이러한 화풍 때문에 제주의 현대미술 정착에 기여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이론에도 밝았던 조영호는 1956년 서양화가 김창해 전시평과 신문에 연재했던 서양미술이론 소개 등을 통해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

당시 예술가가 그랬듯이 붓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상경, 30여년간 서울에서 살다 지난 1980년께 제주로 돌아온 뒤 1989년 타계했다.

미술평론가 김유정 정리 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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