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발묵' 제주 한국화 새 장 열다
실경 보단 이상향으로서 사의(私意) 깃든 제주 그려
미술 교수로 30여년…학문적 미술, 제주 정착 견인

   
 
   
 

지난해 5월 제주도문예회관에서는 사제(師第)의 작품이 나란히 걸린 의미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2007년 호암 양창보 선생이 지병으로 타계하자 제자들이 1주기 추모 유작전을 열었다. 그 자리에는 '화단의 영원한 큰 산'으로 불릴만큼 후배들에게 깊은 가르침을 전하던 호암의 작품과 그의 정신을 이어나가겠다는 제자들의 다짐이 함께 선보이며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야기했다.  

호암 선생은 1937년 제주시 애월읍에서 태어났다. 오현고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제주에서 미술과 교사·교수로 재직하며 제주 미술의 초창기 교육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했다. 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회장, 한국예총제주도지회장 등을 역임하고 제주도미술대전 심사위원, 제주도문화재 위원, 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을 맡는 등 제주 문화계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제주에서 체계적인 미술 교육이 이뤄지기 시작된 것은 1973년 제주대에 미술교육과가 설치되면서부터.
호암 선생은 제주에서 미술교육이 막 태동하던 이 시기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30년여 간 제자를 배출했다. 이렇게 배출된 제자들은 도내 각 학교의 미술교사로 활동하며 미술이 학문으로서 수업을 통해 일반화, 내실화 되는 데 기여했다.

호암 선생은 미술교육가로서 역할과 함께 화가로서의 삶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생애 스물두차례 개인전에서 올곧게 사의(寫意)에 바탕을 둔 관념 산수화를 선보였다. 관념산수란 사실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정신세계의 우월함을 바탕으로 회화의 품격을 추구하는 작풍. 때문에 그의 그림은 언뜻 사실적 풍경을 그린 듯 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다.

송나라 소동파는 대나무를 그릴 때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해야 한다(成竹於胸中)"고 말했다. 이말은 단순히 외형을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의 운치를 표현해야 한다는 말로 그림을 창작하고 감상하는데서 논리적인 이해 보다는 주관적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됐다.

   
 
  작업실.  
 

   
 
  호암선생이 생전 쓰던 유품.  
 

호암 선생의 작품 역시 그러하다. 주로 제주의 풍광을 그렸지만 오랜 습작을 통해 터득한 수묵의 미묘한 조화와 선묘의 적절한 완급 조절 등 독보적인 창작으로 통해 이상향으로 거듭난다.

특히 발묵(發墨)에 능했던 그는 그런 과정들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제주 한국화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의 미술 교육을 이끌었던 한 스승이 떠난 자리는 의외로 공허함이 컸다. 하지만 이제 그 빈 자리는 그가 남긴 작품으로 채워져 살아온 삶과 작품정신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유정
정리 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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