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고작가지상전> <15> 화가 강태석
제주 피난온 홍종명에 사사…고교 때 제주 첫 학생개인전
제도권 답습거부, 서구 작법으로 한국적 형상 구현에 노력

   
 
  강태석 생전 작업 모습.  
 

   
 
  '가족'  
 

   
 
  '무제'  
 

1955년 제주미술계는 한 고교생의 개인전으로 들떴다. 이 '어린 화가'는 훗날 현대미술의 전 영역을 실험적으로 넘나든 故 강태석이다.

강태석은 1938년 제주시 일도동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한국전쟁으로 제주에 피난 온 홍종명에게 그림을 사사받은 그는 서울 예술고 2학년 재학중 제주시 남궁 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강태석 유품.  
 
   
 
  지인들과 한 때.  
 

제주 최초의 학생개인전으로 회자되는 이 전시에 대해 당시 제주신보에는 '양질감 있는 강군의 솜씨가 관객들의 놀라움을 샀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을 정도로 '신인'의 탄생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강태석은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한다. 1961년에는 제1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누드A'로 입상의 영광을 안는 등 미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제주여자중·고등학교 미술교사로 1년 동안 교단에 섰던 그는 이후 평생을 창작에 전념하다 1976년 강원도 속초 도립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요절한다.

강태석은 화법이 다양한 작가로 알려졌다. 때문에 작품성향으로 어느 한 범주에 묶는 것이 그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강태석은 말그대로 현대미술의 전 영역을 실험적으로 넘나들며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데 평생을 보냈다.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얘기되는 그의 '화법찾기'는 한편으로는 무수한 서구 거장들의 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길에서 습득한 형상의 장단(長短)을 발췌하고 습득해 자신의 길 찾기에 도구로 이용키도 했다.

그의 작품은 서구 거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것처럼 비쳐진다. 그는 서구적 형상을 응용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작법을 활용해 자신의 삶과 정서, 감정, 민족적 정서, 풍토적 서사들을 엮어냈다. 이런 '강태석식' 표현들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것이나 주제가 꿈, 환상, 원초성이라는 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비켜있지 않은 까닭도 바로 이 두 가지 요소가 절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태석은 제도권 예술행태의 답습을 거부하는 대신 스스로 한국적 미학을 찾기 위해 독자적 길을 갔던 열정의 화가였다. 하지만 실험적인 그의  '화법찾기' 노력은  발단-전개-절정의 과정까지 다달았지만 '죽음'으로 그 결말을 맺지 못했다.

1976년·1983년 두 차례 유작전이 열렸고, 1988년에는  「강태석 화집」이 발간되는 등 끝까지 타오르지 못한 그의 열정을 기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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