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조각가 김형찬
제주민의 지난한 삶, 신화 형상화로 표현
첫 개인전 뒤 사망…유작 30여점이 전부

   
 
  故 김형찬과 그의 작품.  
 
신화주의 일색이다. 미술은 기법과 함께 소재, 풀어내는 방식에도 유행이 있어 요즘은 너도 나도 신화를 담는다. 하지만 관객의 일상과 유리된 사람들이 주창하는 신화란 감흥없이 포장된 사이비 미술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런 미술은 신화를 소재로 하는 소재주의일 뿐이다. 삼색 물색을 바쳤던 인민의 근원적 슬픔과 기쁨, 그 아름다움을 육화하고 작품으로 승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 한 조각가. 김형찬의 삶은 짧은 생으로 인해 그가 탐구하려던 신화의 조형적 작품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김형찬 작.  
 
故 김형찬은 1971년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세화고, 제주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짧은 생, 신화를 조형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첫 결실은 2001년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열린 개인전 '까마귀 울 때' . 김형찬은 이 전시에서 제주민의 지난한 삶의 역사가 묻어나는 제주신화를 합성수지와 돌, 동판을 이용해 형상화한 작품 20여점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그대로 '마지막'이 됐다. 신화의 조형성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고민했지만 젊은 날 딱 한 번의 개인전에 그친 채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첫 개인전을 끝내고 새로운 신화 조형에 천착하던 그는 그로부터 몇 년뒤인 2006년 9월 지병으로 사망한다. 김형찬은 "서구적 방식에 눌러앉아 실험성을 참칭(僭稱)하는 관념의 난무(亂舞)를 경계하고자 했으며, 신화의 미학은 제주의 조형예술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에서 비롯됐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는다. 욕망은 인간이 짊어진 천형(天刑)이기 때문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지만 예술의 꿈을 키우다 못내 꺾인 젊은 예술가의 삶은 인생의 무상함을 가득 안긴다.

욕심이 없고 순진무구했던 조각가 김형찬. 그는 천성이 물같이 고와 잔잔한 호수와 같이 크게 일렁이는 일이 없었다. 시달린 것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였고, 사람들로부터였고, 그래도 불평 없이 짧은 생을 살았다. 생애에 걸쳐 30여 점의 조각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그는 먼 길을 갔다.

2006년 사망할 때까지 세화고 비원전 활동, 제주도미술대전 출품(대상 및 특선 수상), 2001년 첫 개인전과 부산과 경주에서 작품을 발표한 것이 전부다.

까마귀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가 없이는 더이상 그의 신화도, 조각도 없기 때문이다. >끝< 

미술평론가 김유정
정리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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