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지난 16일 오전 제주시 한국병원.이날은 의료계의 3차폐업으로 도내 70여군데 동네의원이 문을 닫은 때였다.

 그래선지 유독 이날따라 환자가 많아보였으며 기다림에 지쳤는지 한결같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었다.마주치는 환자마다 의약분업이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불평을 쏟아냈다.

 어린 조카 둘을 데리고 온 김은경씨(38·애월읍).보채는 조카들을 다독이느라 여념이 없던 김씨는 최근 생후 6개월된 자신의 애가 감기에 걸렸을 때를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애를 들쳐업고 제주시까지 왔는데 모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 아무데도 없는 거예요.간신히 약국을 찾았지만 약을 타는데 한두시간이 걸려야 말이죠.지금의 분업체계는 사소한 병도 중병으로 키워놓기 딱 좋아요.노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3200원이면 진료에서부터 주사,하루분 약까지 해결됐던게 지금은 거의 2배로 뛰었다는 것이다.

 동네 개인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이곳을 찾았다며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주부(27·도남동)도 “기다리는 불편도 불편이지만 이달초부터 진료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병원 인근의 H약국을 찾은 강신옥씨(62·일도2동).2살난 손자가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은 강씨는 약을 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자 칭얼대는 손자를 차량에 먼저 태운 뒤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씨는 “항생제 남용을 막기위해 의약분업을 하는 건데 지금은 너무 불편하다”며 “보험료가 또 오르면 서민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호소했다.그는 한술더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 약국에선 애월읍 봉성리에서 온 고진옥할머니(73)도 한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문을 나섰다.

 고두산씨(40·서귀포시 대포동)는 더 아찔했던 순간을 털어놓았다.보름전쯤인가 폭우가 내린 일요일 새벽이었다.한살바기 아들이 갑자기 고열에 시달려 병원을 찾았으나 그곳에서 처방한 주사제를 구하기 위해 무려 5군데 약국을 헤집고 다닌 것이다.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어렵사리 약을 구해 병원에 당도했지만 다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고씨는 “애를 잡을뻔 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의약분업을 하려면 먼저 연습이라도 한 뒤 시행했어야 했다.병원비는 올랐지 앞으로 보험료까지 크게 뛴다니 우리 국민들이 어질어도 너무 어질다”고 한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사원(34·연동)은 “환자들이 아무리 불편해해도 일부 병원에선 ‘그것보라’는 듯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비난했다.

 신경통을 앓는 어머니 때문에 이날하루 직장도 팽개치고 제주의료원을 찾은 문복실씨(39·여)는 “비용도 훨씬 더 들고 대기시간도 오래고 그렇다고 처방전에 씌어진 약조차 제대로 살 수 없는 의약분업은 시기상조”라고 단정지었다.

 의료계와 정부에 대한 불신을 동시에 드러내는 환자들도 많았다.내·외과를 겸하는 광양로터리 K의원을 찾은 김세한씨(49·일도2동)는 “폐업하는 의사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환자를 볼모로 해선 안된다”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대부분 불편해하는 의약분업을 강행하는 정부는 더욱 이해가 안간다”고 나무랐다.<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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