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부터 고경찬의 외식산업이야기 코너를 통해 제주외식업의 변천사를 비롯, 제주외식산업의 명과 암 창업에 따른 주의점 등을 다양하게 조명해 본다.

제주지역에 근대적인 형태의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일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점들은 관공서와 주택가가 몰려 있었던 제주시 중심부인 현 칠성로와 관덕로 일대에 주로 분포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도 유명 상점들은 거의 칠성로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연유로 칠성로는 '제주상권의 원조지'로 인정받고 있다. 일제시대의 경성실 지금의  관덕정일대에서 최초의 외식업 장사를 시작한다. 전문은 양과자를 만들어 팔았다. 이곳에 상점들은 대부분의 간판에 상호와 함께 '양품백화(洋品百貨)' 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이는 상점마다 어떤 특정제품만을 취급하지 않고 다양한 품목을 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화(百貨)'라는 명칭이 쓰여졌다해도 이는 현재의 백화점과는 차이가 있으며 현재 슈퍼마켓과 대형잡화점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칠성로에 막강한 전통을 고수했던 귀금속, 시계류 판매업의 시초도 일제때 거슬러 올라간다. 원조격인 수우시계점,  삼시계점 등이 칠성로에서 자리를 잡은 이래 외식업 부분
이 활성화됐다.

외식업 자체가 지금처럼 전문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칠성로는 상시 제주상권의 중심지 뿐만 아니라 제주의 상권도 거머쥐고 있었다. 이때 상권은 처음에는 일본인이 많이 갖고 있었으나 점차 도내인 들이 경영권을 갖기 시작하면서 8 ·15 해방에 가까워지는 시점에서는 거의 대등하게 되면서 칠성로는 제주상권이 중심지이자 문화 공간과 낭만의 장소로 이어져 갔다. 제주도에서 최초로 '파리원'이라는 다방이 칠성로에 생겼고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설이 고급화된 다방들이 이곳에 자리잡기 시작해 새로운 다방문화를 열게 되었다. 이러한 요인들로 제일극장, 중앙극장, 등 영화관도 들어섰다.

1960년대 중앙로가 생기고 오현로쪽에서 탑동쪽으로 도로가 개설되면서 신축 건물들이 증가하고 칠성로는 번영을 맞기 시작한다.

1973년 3월 도내에서 처음으로 백화점형태 매장인 아리랑백화점이 입점하면서 칠성로는 최대의 호황을 누리며 '제주의 명동'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1976~1990년 제주시 연동 신시가지(신제주)·일도지구 택지개발과 아파트의 신축 등으로 인한 인구이동, 중앙 지하상가(중앙로)의 설립 등으로 점차 상권이 분산됐으며 외환위기이후 급속히 위축됐다. 상가 입주자들은 번영회를 결성, 차 없는 거리, 인도의 재정비 등을 실시하는 한편 '문화의 거리'를 조성했으나 지난 제11호 태풍 나리로 인한 집중호우 피해, 무분별한 택지개발이 상권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한국조리제과학원 대표 고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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