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림읍 월평리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물곳연못의 대표적인 수생식물은 수련이다.


◈물곳연못·뒷샘(한림읍 월령리)
◈움부릿물(한림읍 월림리)

 태풍 프라피룬과 사오마이가 언제 이곳을 할퀴고 갔냐는 듯 한림읍 월령리의 뒷샘은 가을 분위기가 물씬하다.높고 푸른 하늘,길섶의 풀벌레 소리,하늘거리는 들꽃에 잠시 눈을 뺏기고 어느새 마음이 넉넉해진다.비스듬한 경사지에 심어놓은 옥수수밭엔 가을빛이 완연하다.

 뒷샘은 자연못이다.면적이 70㎡가량되며 주변보다 지형이 낮아 자연스레 못이 형성됐다.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을 만큼 물이 풍족하다.

 또 해송·자귀장나무·누리장나무 등 키가 큰 교목들이 장승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게 아늑하게 느껴진다.

 대표적인 수생식물로서 사초과의 세모고랭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큰고랭이·말·개여뀌·닭의장풀 등이 눈에 띈다.소금쟁이와 물달팽이가 서식하고 있는 것도 확인됐다.

 예전에는 이 일대가 ‘빌레’로서 넓적하고 평평한 돌이 지면 또는 땅속에 많이 묻혀 있었으나 최근 몇 년동안 밭으로 개간됐다.이에따라 뒷샘은 배후 습지와 차단됨으로써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

 현재 뒷샘주변 농경지는 대개 생명력이 강한 선인장을 경작하고 있다.

 물곳연못은 뒷샘과는 달리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인공연못이며 2개의 못으로 나뉘어져 있는 게 특징.못 중간에 높이 1.5m,폭 2.5m 가량의 방둑이 있어 못을 남과 북으로 가르고 있다.남쪽 못엔 수령을 알수 없는 꽤 오래된 팽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게 운치을 더한다.

 특히 연못 주변에 팽나무가 자라게 된 배경을 알게되면 선인들의 지혜를 감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인공 못 주변에는 대개 팽나무가 자라고 있다.물론 자생하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못 조성과 함께 심어놓은 것”이라며 “이같은 현상은 지역주민들이 멀리서도 물의 위치를 알수있도록 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지금이야 못 주변에 각종 건축물이 들어섬으로써 위치를 쉽게 가늠할수 있겠지만 옛날에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팽나무가 물이 있는 곳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요긴하게 쓰였을 듯 싶다.

 물곳연못은 2개의 못을 합쳐 면적이 450㎡가량 된다.1870년께 판 것이며 수심은 1∼1.5m가량 된다.

 30여년전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맑은 물이 고여 음용수와 목욕통,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됐다.근래들어 주로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이곳에는 수련과 여뀌,개구리밥,붕어마름,돌피 등이 서식한다.대표적인 수생식물로는 수련을 꼽을수 있다.

 이곳에는 또 소금쟁이·붕어가 서식하며 왜가리가 가끔 찾아온다.이 마을에 사는 좌유랑씨(69)는 “작년 여름때 물곳연못에서 길이가 50㎝가량되고 배가 누런 드렁허리를 잡아올린 적이 있다.또 가끔 물베염(유혈목이)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움부릿물은 중산간 국도 16호선 한림읍 월림리사무소 지경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다.

 월림리는 1935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당시 한림면 명월리 일부와 한경면 저지리 일부를 갈라서 만든 마을로서 명월(明月)의 월(月)과 한림(翰林)의 림(林)을 따서 월림(月林)이라 했다.

 오창명이 쓴 ‘제주도 오름과 마을이름’에 따르면,“속칭 ‘움부리·음부리’ 또는 ‘음부굴’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고 ‘움부리’는 분화구의 뜻인 ‘굼부리’의 변음이 아닌가 한다.일제시대 지도에는 음부동(音부洞)이 나타난다.음부(音부)는 ‘움부리·음부리’의 음가자 표기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움부릿물은 월림리 설촌과 떨레야 뗄수 없는 관계다.한림읍이 펴낸 한림읍지에 따르면,‘움부릿물은 지금부터 270여년전 금릉리에 사는 ‘고혜한’이란 사람이 생활이 무척 빈곤한데다 가뭄이 크게 들어 농작물마저 타 들어가자,처자식이 굶어 죽는 것이라도 막아보고자 사냥길에 나섰다.그러나 이렇다 할 짐승을 잡지못한 채 집을 향해 가던 도중 우연하게 움부릿물을 발견하게 됐다.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은 채 고여있는 움부릿물을 본 고씨는 식구들을 아예 이곳으로 데려와 나무로 엮어 임시로 거주할수 있는 집을 만들었다.움부릿물은 짐승들이 몰려와 물을 축이던 곳이었기 때문에 고씨는 주변에 잡목이 우겨진 곳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서 사냥을 해 금방 부자가 됐다.고씨는 이 마을의 발상시조(發祥始祖)로 남게 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움부릿물은 설촌과 함께 유입인구가 크게 늘어 물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물빠짐을 막기 위해 1807년께 대정읍 무릉리 안창동지경의 찰흙을 운반해 바닥을 다졌다.

 이후 음부릿물은 수심 1∼2m를 유지하며 물이 마르지 않는 못으로 이름나기 시작했다.

 또 음용수로 쓸 목적으로 1936년께 인근에 알통물을 파게 되자 음부릿물은 우마급수장과 목욕통으로 활용됐다.

 1968년 어승생 물을 끌어들여 상수도가 개설됨에 따라 쓰임새를 차츰 잃기 시작했고 1980년 중산간도로가 확장·개설됨에 따라 음부릿물 일대 200평이 도로에 편입·매립된다.

 월림리는 이와함께 우마급수의 경우에도 상수도에 의존하게 되자 이후 음부릿물에 대해 200평을 추가 매립해 소공원을 조성함으로써 원형을 잃은 상태다.

 이 마을에 사는 김공필씨(75)는 “어릴 때는 사내아이들이 헤엄을 쳐 음부릿물 한바퀴를 돌아야 비로소 사내 대접을 받을수 있을 정도로 못이 매우 컸다”고 회고했다.

 현재 이곳에는 여뀌·기생여뀌·사마귀풀·비녀골풀·도꼬마리·병아리방동사니·참방동사니·알방동사니 등의 식물과 소금쟁이·붕어가 서식한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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