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삼진·한국은행 제주본부장>

   
 
   
 
한국은행은 오는 23일 5만원권을 새로 발행할 예정이다. 지난 2007년 5월 고액권 발행계획을 발표한 이후 2년이라는 긴 준비기간과 의견 수렴을 거쳐 발행되는 것인 만큼 국민의 기대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5만원권 발행으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발행과 관련한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화폐의 보관, 이동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5만원권은 기존의 화폐에 비해 한층 강화된 띠 홀로그램과 같은 위조방지 기능을 담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뛰어난 예술가인 신사임당이 초상인물로 들어가 있다. 화폐도안 자문위원회 추천, 일반국민 여론조사, 전문가 의견조사 등의 여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신사임당이 선정됐는데 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폐중 처음으로 여성이 초상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신사임당은 초충도, 산수도 등 뛰어난 작품을 남긴 조선 중기의 여류 화가이자 작가이며 익히 잘 알려진 대로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가부장제하의 현모양처 이미지가 현대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율곡 이이가 쓴 신사임당의 일대기(先行狀)를 보면 신사임당은 수동적인 현모양처보다는 뚜렷한 주관을 가진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 남편이 잘못된 일을 하면 바른 길로 인도하고 일곱 자식을 양육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낸 것을 보면 과히 수퍼우먼이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듯 싶다. 대학자 율곡 이이도 이런 신사임당의 모습에서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이이가 부친의 행장(行狀, 일대기)은 쓰지 않고 신사임당의 일대기를 썼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현대 여성들에게 이런 신사임당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신사임당처럼 수퍼우먼이 돼야한다는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신사임당의 자아실현을 위한 열정만큼은 현대 여성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예로부터 제주여성들은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다 보니 여자들도 남자 못지 않은 강인함을 얻은 것이리라 생각된다. 특히 조선 후기 김만덕과 같은 여성은 어려움을 딛고 상업으로 크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제주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 전재산을 풀어 다수의 생명을 구해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제주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3.3%로 전국평균보다 무려 13%나 높게 나타났다. 제주여성의 강인한 생활력이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우수한 인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그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크다. 서비스 산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제주의 경우 여성 인력자원의 중요성은 더욱더 클 수 밖에 없다. 단순한 양성평등 관점이 아닌 제주의 역동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제주여성들이 가진 잠재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면 먼 훗날 한국은행권에 제주 출신 여성의 초상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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