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나가 있던 아들아이가 집에 왔다. 두 달여간의 여름방학을 맞아 다니러 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방학동안 그 아이가 그냥 미국에 있었으면 했다.

자식 얼굴 보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만 요즘의 국내외사정이란 편하지도 않거니와 고환율에 오고가는 비행기 삯도 만만치 않아 솔직히 선뜻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들아이의 생각을 만류하지 못했다. 전화로 내 생각을 전하는 중에 '엄마가 해준 음식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그대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차라리 엄마가 보고 싶다는 달콤한 명분을 내세웠더라면 '일 년만 더 참으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이미 녀석은 내 약점을 알고 모성적 본능을 꿰뚫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허술했던 집안이 갑자기 튼실해졌다. 일찍 나가고 늦게야 들어오는 남편과 나, 둘만의 공간이었던 적막했던 집안이 거대한 가구를 들여 놓은 듯 꽉 찼다.

생활도 더 바빠졌다. 바깥일을 하면서 세끼 식사를 챙기려니 심적 부담 또한 여간 아니었다. 예전처럼 매일같이 보고 지낼 수 있는 사이가 아닌 잠시 머물다 또다시 이국땅으로 멀리 가야할 녀석이었다.

 게다가 내가 만들어준 음식이 먹고 싶어 스무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 나의 분신이 아니던가.

 모든 일과가 녀석에게 맞추어 돌아갔다. 바쁜 일과 중에도 '저녁은 무엇을 해줄까' 궁리하였고, 지쳐 잠에 빠지면서도 아침엔 무엇을 내놓을까 찬거리 걱정을 반복하였다. 남편과 둘이만 살던 일상에 생긴 작은 변화로 생소한 긴장감이 파문을 일으키며 무의식속으로 번져 나갔다.

 한 주가 지나자, 아들아이는 내 삶속의 일부로 들어와 앉았다. 턱 밑이 거뭇한 청년이었지만 늦게 얻은 쉰둥이처럼 집안은 북적거렸고 녀석으로 인해 남편과 나는 행복했다. 나만의 틈새는 자취를 감췄지만 어느새 몸은 변화에 적응되어 다시금 원활함을 찾아 갔다.

 그런데 어느 날 녀석이 느닷없이 짐을 꾸렸다. 엄마와 같이 있다 보니 긴장감이 없어졌다며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대로 홀연히 찾아와 내 생활을 뒤흔들어놓더니, 이제는 지낼만하니까 또 다시 마음을 헤집어놓고 제 맘대로 떠난단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못보는거야?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먹고 싶다며!" 
 뾰루퉁한 투정에 녀석은 아이를 타이르듯 나를 다독인다.
 "엄마~, 친구도 봐야 하잖아요." 

 배낭을 짊어지는 모습에서 남자의 의지가 묻어나왔다.

허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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