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간판 아나운서에서 서울대 말하기 선생님으로 변신한 유정아(43)씨. 유씨가 2004년부터 5년째 이끌어 오는 ‘말하기’ 강좌는 서울대 최고의 인기강좌 중 하나다. 최근엔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문학동네)라는 책도 나왔다. 출간 한 달만에 2만부가 넘게 팔렸고 5번째 재판을 찍었다.

-수강신청이 10초만에 끝날만큼 인기라고 들었다. 혹시 미모의 아나운서가 선생님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런 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서운하게도 학생들이 나를 여자로 안 보는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많아서 그런지 거의 엄마처럼 본다.”

-그러면 인기 비결이 뭔가?

“입소문이 좋게 난 것 같다. 말하기 수업을 통해 자기를 점검할 수 있었고 성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아이들이 많다. 서울대 학생들끼리 강의평가를 공유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서 내 수업이 추천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말하기 선생님으로 변신한 계기가 궁금하다.

“2004년 정운찬 전 총장이 ‘글쓰기’와 ‘말하기’ 강좌를 동시에 개설했는데, 말하기는 내가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를 맡게 되었다. 수강신청이 많아서 지금은 강좌수가 10개로 늘었다. 선생님들도 다섯 분이 되었고. 한 강좌에 30명씩 수강하니까 한 학기에 300명이 말하기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말하기 강좌에 대한 서울대 교수들의 반응은 어떤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말하기 교육이 왜 필요하냐고 얘기하는 교수님들도 있었다. 글쓰기에 비해 말하기가 부수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강좌명을 ‘사고와 표현’ 같은 이름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수업에서는 화법이나 화술을 가르치나?

“많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전공수업으로 화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에서는 전체 학생들 대상의 교양수업으로 말하기를 가르친다. 나는 서울대의 방향이 맞다고 본다. 말하기를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좁게 정의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성찰하고, 내 생각과 앎을 정리하고, 남을 깊게 이해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기술을 알아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사회과학과 인문학, 문화 등을 풍부하게 끌어들여 말하기를 재정의하는 게 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내용은 뭔가?

“말하기를 ‘말만 잘하기’로 생각하지 말자는 거다. 말하기를 제대로 한다는 건 화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거다. 나는 말하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성숙해지길 바란다. 자기가 말할 게 있으려면 안에 채워넣어야 한다는 거, 말을 잘하려면 인문학적인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 실수할까봐 입을 닫아버리지 말고 실수까지 드러내면서 성장하는 거라는 거, 그런 것들을 깨우치길 바란다.”

유씨는 매끈한 답변을 선택하지 않았다. 말은 방송을 진행할 때처럼 똑 떨어지지 않았다. 복잡하고 좀 거칠더라도 자기 얘기를 하려는 태도가 분명했다. 답변을 찾는 과정의 곤혹스러움을 고스란히 노출할지언정 판에 박힌 이야기로 돌아가지 않았다.

-방송과 달리 강의가 주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는가?

“방송이나 강의나 다 말로 먹고 사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거고. 그런데 방송은 눈 앞에 카메라가 있지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강의는 바로 앞에 나를 보는 눈들이 있고, 거기서 그때그때 어떤 느낌이 전해온다. 듣는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에 따라 내가 하는 말도 순간순간 변주된다. 더 짜릿하고 성취감이 크다. 방송은 사실 좀 막막하다. 지금 이 얘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르니까.”

-근래 말의 힘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바마의 연설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바마의 말이 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물론이다. 우선 오바마는 참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또 좋은 눈빛을 가졌고. 단문을 사용한 연설도 힘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말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그들의 말에 진정함이 없어서일 거다.”

-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는 열광하고, 누구는 비난을 퍼붓는다. 노 전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친한 사이라면, 조금 침묵하라고 얘기했을 것 같다. 손을 바지주머니에 꼽고 연설하는 사진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품격이 없다고 말한다. 전하는 스타일 때문에 그 사람의 진정함을 못 보게 한다면 그건 안좋은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품격’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들을 것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 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다들 소통에 문제가 지적한다. 말하기 선생님으로서 충고를 한 마디 한다면?

“말에서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건데, 이 대통령의 말에서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유씨는 책에 “사람의 마음은 꼭 논리적으로 옳은 것에만 움직이지 않는다”며 “말하는 자의 정직성과 윤리성, 상대를 배척하거나 타도하지 않고 진심으로 설득하려 하는 듯한 선한 느낌 등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마음은 움직인다”고 썼다.

-문자나 이메일, 블로그, 게시판 등 디지털 소통수단의 발달을 “당신도 말씀하시죠, 저도 말씀합니다”라고 정리해 놓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말들이 폭발하고 있는데 우리사회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소통의 위기를 겪고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소통의 방식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소통을 원한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한 소통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또 새로운 소통수단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억누르려고 하면 안 된다. 세상이 진보하려면 젊은 세대의 눈에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세상이 변하는 거다. 그걸 막으려고 하면 사회가 보수화되는 거고. 젊은 세대의 말이 기성세대의 말을 대체하면서 진보하는 거라고 믿는다.”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는 깊은 허무가 있다. 말하기가 제대로 된다면 진짜로 좋은 인간이 되고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란 말을 했다. 또 “토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그건 오만이다”라는 말도 했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도 종종 있었고. 모른다고 말하거나 모순되는 생각을 함께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편인가?

“모른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알 준비가 안 된 사람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라고 아이들에게도 얘기한다.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게 당연하지 않나.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게 더 부끄러운 것 같다. 서로 다른 생각이 자기 안에 공존하는 것도 누구나 다 비슷하다. 사람들이 다 합리적으로만 살지는 못 한다. 자기 안의 분열을 숨기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

인터뷰는 2시간 가량 이어졌다. 마지막 질문이라는 말에 유씨가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힘들고, 좋은 질문을 하는 게 좋은 답변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면서.

-당신의 말하기에 대해서 만족하는가?

“자기의 말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늘 쉽게 말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나 어울릴법한 현학적 말하기에 끌린다. 방송을 진행할 때도 주술호응이 안 되는 문장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 적절한 질문을 좋은 문장으로 구사해 질문을 던지는 것도 매번 어렵고.”  <국민일보 쿠키뉴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