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동화작가>

내게는 아홉 살 꼬마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지금 쓰고 있는 내 동화의 주인공이면서 손가락에 꼽히는 어릴 적 친구의 아들이다.오늘은 그 꼬마친구 이야길 하려고 한다.

 며칠 전 친구랑 통화를 하면서 의례 그 꼬마친구의 안부를 물었더니 내 오랜 친구가 그 녀석 때문에 지금 몹시 기분이 상해 있단다.
 이야기인즉, 아침에 꼬마친구의 아빠, 그러니까 내 친구의 남편을 출근시키려고 보니까 하이얀 와이셔츠에 여자립스틱자국이 있더란다. 립스틱 자국에 대해서 해명을 요구했더니, 친구의 남편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회사로 급히 출근을 하고. 오후에 학원을 간 꼬마친구 마중을 나갔더니 그 꼬마친구가 대뜸 묻더란다.

 “엄마, 아빠하고 이혼할 거야?” 그녀는 흠씬 놀랐단다.
 “아직 생각 중이야.”

 그런데 말이다. 아홉 살 꼬마친구의 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엄마하고 아빠하고 이혼하면 나는 아빠랑 그 새엄마랑 살 거야.”

 ‘그 새엄마……!’

 그녀는 순간 둔탁한 망치로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하더란다.

 “새엄마?”

 “응, 아빠가 데려오는 아줌마.”

 “준성이는 엄마랑 안 살 거야?”

 “응.”

 “왜?”

 “엄마는 돈이 없잖아.”

 그녀랑 통화하면서 나는 아홉 살 꼬마에게도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으로 인식되고 각인되어졌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배신이네.”

 “그러게, 내가 절 어떻게 키웠는데…….

 전화를 끊고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글쎄, 그녀석이 내 아이였어도 대답은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한참동안을 생각했다. 언제든 자립할 수 있는 나의 여건을 만들어 놓아야겠다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은 날에 내가 버티고 서 있어야 할 공간은 모두 사라지리라는 불안감이 갑자기 엄습해 오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 우리는 10년, 20년 그 후의 우리의 생을 스스로 버티고 설 수 있게 자립을 꿈꿀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온 것 같기도 했다.
 
과거, 우리의 부모님처럼 자식이 자라서 어떻게 하리라는 생각과 말은 정말이지 애당초 생각지도 말아야 할 상황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사실과 그런 세상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고 바싹 마른 나무를 보는 것 같아 가슴에 싸한 바람이 불었다. <장수명·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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