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경 제주외고 논술강사

파랗게 높은 하늘이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온 몸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데도 나는 도통 그 싱그러운 가을을 느낄 수가 없다. 무엇을 해도 뻥뚫린 구멍 사이로 바람이 들고나는 기분이다. 3년전 우리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땐 가을도 아니고 한 겨울이었는데 엄마는 얼마나 더 쓸쓸했을까.

다음 주면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 내가 결혼을 하고 바로 나와 남편은 '여동생 시집보내기' 프로젝트에 돌입했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하라며 주변 사람들을 이래저래 성가시게도 했고, 소개팅은 무조건 100% 사수해야 한다며 여동생을 반강제로 소개팅 장소에 내보내기도 했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동생이 정말 결혼을 한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일지! 시간이 흐르고 동생은 키 크고, 듬직하며, 꼼꼼하고, 심성 착한 반쪽을 만나 이제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주말 부부로 사는 우리 때문에 동생은 내가 임신하고 출산하는 그 과정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했고, 11개월 된 조카를 제 딸처럼 키워냈다.

그렇게 내게는 엄마 같고, 남편 같은 동생이 제2의 인생을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내 곁을 떠난다. 떠난다니 참 어이없는 말이라 하겠지만, 지금껏 한 번도 동거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동생이기에 그만큼 내 마음은 애틋하고, 또 애틋하다.

첫째 딸이었던 나, 둘째 딸이었던 동생! 우리는 2년 터울의 자매다. 어릴 적 우리는 정말 동네 소문 자자할 정도로 싸웠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동생잡기였고, 동생은 특유의 고집과 뭉으로 이겨냈다. 그런 공격 속에서도 동생은 단 한 번도 내게 막말을 하거나, 함부로 이름을 불러대는 하극상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난 참 못된 언니였고 내 동생은 세상 둘도 없는 착한 동생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와 동생은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를 하며 힘든 고교시절을 보냈고 서로의 외로움과 수많은 심리적 혼란들을 공감하며 서로 보듬어 주며 지금껏 한 집, 한 이불 속에서 살았으니 그야말로 동생이 시집가는 일은 내겐 엄청나게 큰일인 것이다.

내가 결혼할 때는 못 느꼈던 수많은 걱정과 고민, 두려움들을 동생을 보내려고 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속 쓰나미를 겪는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녀만의 애교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그녀의 지혜와, 어떤 것으로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그녀의 너그러움이라면 그 어떤 힘든 일도 가뿐하게 이겨내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란 걸 안다. 너무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으로 동생에게 투정을 부리고,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잔소리로 동생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또 매일 밤 동생과의 헤어짐을 생각하며 끙끙대는 것일까?

여동생 시집보내기! 그것 참 힘들고 어렵다. 한 번이니까 하지 두 번은 못하겠다 싶다. "혜정아, 언니 마음 알겠지? 앞으로 내 디딜 너의 삶이 누구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날들이기를 언니가 매일매일 빌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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