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 제주도여성특위 여성사정립분과위원장

   
 
   
 
스치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작열하던 태양이 숨을 죽이나 했더니 어느새 내가 시월의 끝자락에 와있다. 탱글한 귤 무더기로 만삭의 몸살을 앓고 있는 감귤목처럼, 나 역시도 출렁이는 억새 군락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또 가을이 되었구나' 여름내 멀쩡하던 가슴이 갑자기 휑해졌다.

메일함을 뒤적였다. 밤새 밀려오는 고독함에 잠이 달아난 지 오래였다. 얼마 전 한 선배가 보내온 이야기가 동공을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마치 자신만은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어릴 때 모두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나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사람은 성공하기를 꿈꾸며 먹지도 않고 자신을 내버린 채 열심히 돈을 모은다. 하지만 이젠 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엔 해친 건강을 찾기 위해 그 돈을 다 써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나는 오래전 그 메일을 읽으며 굳이 생물학적 근거를 거론치 않더라도 나 역시 인간임엔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또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 생각은 않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또한 유년시절의 나 역시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지만 막상 결혼을 한 후 어른이라는 낙점을 받았을 때 주위의 일이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어른들에겐 괜찮은 수위의 행복이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려움이 많았다. 어머니가 해주는 밥에 아버지가 쥐어주는 용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던 그 시절이 생애 최고의 시기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원없이 학업에 정진하리라 다짐하며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스스로 확인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는지 모른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믿었던 '책임'이라는 타깃을 향해 오로지 일로써 성공의 승부수를 띄웠던 열정의 시절들. 끼니까지 놓치면서 일에 빠져들었고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배움에 정진했었다. 그렇게 20여년을 보내고 나니 생활이 안정돼 갔다. 두터워진 이웃과의 교분에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갑자기 찾아온 늙음의 현상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 포진되어 있는 양호한 환경들로 인해 나는 행복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우려한대로 언제부턴가 육체적 부실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릎이 서걱거리고 어깨에 통증이 빈번했다, 선배가 보냈던 메일처럼 나는 오랫 동안 스스로의 돌봄에 소홀하였던 것이다. 작은 일신도 다스리지 못함에 앞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건강해야 아름다운 시월의 밤을 또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일에 떠밀려 늦게야 귀가했지만 스산한 갈바람을 등지고 동네어귀를 돌았다. 숨이 찬 나를 보고 동네사람들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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