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제주도 여성특위 여성사정립분과위원장>

   
 
   
 
올가을에 책을 냈다. 「바람의 섬에게 길을 묻다」라는 수필집이다. 문단 데뷔후 세 번째 산고를 치른 셈이다. 책의 깊이나 문장력의 높고 낮음을 떠나 솔직히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발간회도 열었다. 나를 아끼는 몇몇 선후배 문우와 가근한 이웃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고 새로운 책도 선보였다. 쉽지 않기는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혼자 고민하며 글 쓰는 시간이 더 여유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책이 나올 때마다 그 편치 않은 일을 해왔다. 일종의 신고식이랄까. 자축의 의미도 의미려니와 나를 아껴주는 이웃들에게는 알려야한다는 부담이 적잖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늦은 나이에 문단에 이름을 내걸었다. 인간을 포용하여 삶의 여적을 용해시켜내는 수필이란 문학과 만난 후, 나도 모르게 생긴 연모의 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원했던 수필가로서 등단을 한 후 나는 뜻하지 않은 고민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내가 정말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버젓이 수필가로 데뷔를 해놓고도 그 직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깊은 두려움에 빠졌다. 어린 시절에 문학인을 꿈꾸지도 않았거니와 내가 공부한 대학에서의 전공 또한 문학과는 거리가 먼 디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깊지 않은 물에 배를 띄우듯, 문학적 소양을 모으지 못하고 성급히 등단한 것에 대한 후회와 걱정들로 인해 나는 생각지도 못한 번민에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보냈다.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작가라는 타이틀이 갖는 무형의 무게와 글쓰기에 관한 스스로의 부담으로 오랜 시간 주눅들어 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시 한 편을 만났다.

'스님이 오랜만에 절집에 돌아오셨다/법당에 들어가 목탁을 치셨다/목탁이 제소리를 내지 않았다/목탁도 자주 쳐주지 않으면/제소리를 잃고 만다/제가 목탁인 것을 잊은 것이다//꽹과리, 징도 자주 쳐주지 않으면/쇳소리를 잃고 만다/종도 사람도 그렇다/본색을 잃고 깨지고 만다//몸이 몸이 아닐 때/내 몸을 목탁처럼 쳐라/시를 쓰지 않으면/몸이 시인인 것을 잊고 만다…' (이명수의 '몸의 기억' )

한 줄의 시 구절 속에 고통의 근원이 숨어있었다. 내가 수필을 쓰는 사람임을 내가 먼저 인지하여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해야 했었다. 등단을 한들 무엇 하겠는가. 글을 쓰지 않는다면 몸은 이미 자신이 글 쓰는 사람임을 잊어버리고 말 것을. 또한 글을 쓴들 무엇을 하겠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내지 않는다면 그 글은 깊은 향기를 머금지 못하고 말 것을.

나는 앞으로도 쉼 없이 글을 쓰고 책을 펴내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내 몸이 스스로 작가이기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나는 이웃들에 대한 사랑도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글을 쓰는 문인이기 이전에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나는 한 사람의 인간임을 몸이 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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