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소설가)

어제 성탄카드를 받았다. 성탄절보다 보름 일찍 도착한 카드 안에는 "감사합니다. 즐거운 성탄절을 기원합니다. 카푸쿠." 라는 서툰 이국어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두 줄 뿐인 문구를 읽고 또 읽었다.

카푸쿠는 아프리카 콩고에 사는 작은 소녀다. 내 서랍 속에는 그녀가 보낸 성탄카드가 두 장 더 있다. 매년 성탄절마다 빠지지 않고 보내왔으니 그녀와의 인연이 올해로 3년째인 셈이다. |

몇 년 전 「블러드 다이아몬드」란 영화에서 아프리카의 사연을 보고, 나는 용기를 내 후원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대면한 사진 속 그녀는 아주 크고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웃음 지으면 가늘어지는 눈초리가 내 아이와 닮아 보였다. 그녀를 알면서 머나먼 적도 어딘가에 있는 콩고가 더 이상 남의 나라 같지 않았다.

그녀를 알게 된 지 일년쯤 되었을 때, 첫 성탄카드가 왔다. 네 살이라 글을 익히지 못한 그녀는 수없이 많은 원을 내게 그려 보냈고, 나는 미지의 나에게 많이 감사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다음해 그녀는 작은 소녀와 하트가 그려진 카드를 보내왔다.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올해로 이제 여섯 살이 된 그녀는 그간 익힌 영어로 자신의 마음을 적었다. 비뚤어지고 엉망인 글씨체지만,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막연히 생각해도 그녀가 살고 있는 아프리카는 이곳에서 무척이나 멀다. 우편을 보내면 3개월이 지나야 받아볼 수 있고, 만나려면 비행기 안에서 꼬박 이틀을 보내야 할 정도이다. 그렇게 멀리에 있어 서로의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수월하지가 않다. 하지만, 그 먼 거리를 지나 서로를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간다. 미지의 그녀를 알아가는 기쁨은 물론, 새로운 아이를 한명 더 얻은 환희를 느낀다. 그리고 만약 나를 알지 못했다면 그녀는 일년 내내 무더운 그곳에서 크리스마스를 체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아와 잦은 내전으로 피폐하고 궁핍한 그곳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진정 필요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벌써부터 온 거리를 수놓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전구의 불빛처럼 화려하고 거창한 성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나를 필요로 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연말의 훈훈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싶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밖에는 전할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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