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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피겨여왕' 김연아, 13년의 꿈 이루기까지
노컷뉴스
입력 2010-02-26 (금) 14:06:32 | 승인 2010-02-26 (금) 14:06:32
   
 
   
 
7살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알게된 어린 소녀 김연아는 친구들을 모아 '올림픽 놀이'를 즐겼다. 텔레비전을 통해 본 '여왕'들의 포즈와 표정을 따라하며 꿈을 키웠던 그녀가 진짜 올림픽무대에 섰다. 따라하던 그 어떤 선수가 아닌 '김연아'로 당당히 시상대 맨위에 오른 그녀는 이제 또 다른 어린 김연아들의 우상이 됐다.

7살 때인 1996년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김연아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았다. 첫 국제대회 출전인 2002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엄청난 가능성의 싹을 보인 김연아는 12살에 트리플 점프 5종(러츠,플립,토룹,룹,살코)을 완성했고 2003년 중학교 1학년의 신분으로 처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주니어 무대에 데뷔한 것은 2004~2005시즌이었다. 처음 출전한 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연달아 2위, 1위를 차지한 김연아는 그해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 마오(일본)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5시즌 출전한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김연아는 2위를 차지했다.

당시까지만해도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천재 소녀'소리를 들으며 세계 피겨계의 주목을 받았던 상황. 하지만 2005 시즌부터 서서히 지각변동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2005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1위에 오른 김연아는 2006년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 마오를 꺾기에 이른다. 당시 아사다 마오는 시니어 무대를 함께 오가고 있었고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할 만큼 인정받던 선수. 하지만 아직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지 않았던 김연아는 아사다를 꺾어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6~2007 시즌에는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그녀의 첫 시니어 데뷔전은 2006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 당시 3위를 차지하며 시니어 무대 연착륙을 한 김연아는 이후 우승 행진을 시작했다. 두번째 시니어 무대인 그랑프리 시리즈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김연아는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차지한다. 한국 선수가 처음으로 시니어 국제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역사는 계속됐다. 곧이어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는 또 한번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우승, 김연아 시대를 예고했다.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2007년. 김연아는 자신의 첫 세계기록을 세운다. 당시 쇼트프로그램으로 '록산느의 탱고'를 연기한 김연아는 허리 통증으로 인한 진통제 투혼을 발휘, 완벽한 연기로 71.95를 받아 세계기록으로 쇼트 1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뒤이어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부상으로 인한 체력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부진, 동메달을 따내는데 만족해야 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오른 김연아는 이후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함께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기 전지 훈련에 돌입하는 등 좀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2007~2008 시즌을 맞이한 김연아는 그랑프리 시리즈 컵 오브 차이나와 컵 오브 러시아를 석권했다. 컵 오브 러시아 프리스케이팅에서는 133.70점을 받아 세계기록을 또 다시 세우기도 했다.



그해 그랑프리 파이널도 김연아의 차지였다. 대회 2연패를 달성한 김연아는 이후 예정되어 있던 한국 고양의 4대륙 선수권에 출전할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고관절 부상이 그녀를 덮쳤다. 결국 고관절 부상은 2008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까지 영향을 미쳤다. 완벽하지 못한 몸상태로 매일 진통제를 맞아가며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1위를 차지하는 등, 동메달을 가져오는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

부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시니어 2시즌이었지만 다음 시즌부터 김연아는 완벽한 몸상태로 시즌을 치를 수 있었다. 결국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아메리카, 컵 오브 차이나에서 모두 우승했다. 2008년 말 한국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은 그녀가 처음 고국에서 치른 국제대회 였다. 하지만 적응하기 어려웠던 엄청난 성원은 그녀에게 큰 중압감을 안겼고 안방에서 아사다 마오에 이어 2위에 그쳐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하지만 2위는 거기까지였다. 2009년 2월 '프레 올림픽'으로 진행된 4대륙 선수권에서 쇼트프로그램 세계기록(72.24)를 세우는 등 최고의 기량으로 우승했다. 1개월 뒤 미국 LA에서 진행된 2009 세계피겨선수권은 김연아의 '여왕' 즉위식이었다.

'죽음의 무도'를 연기한 쇼트프로그램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76.12의 신기록을 세웠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131.59로 총점 207.71을 받아 신채점제에서 최초로 200점을 넘기는 여성 스케이터가 됐다. 꿈에 그리던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는 시상대 위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올림픽 시즌, 김연아는 그랑프리 시리즈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프리스케이팅(133,70), 총점 세계기록(210.03)을 경신하며 우승했고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쇼트프로그램(76.28) 신기록을 또 작성하는 등 그랑프리 파이널에 이르기까지 우승행진을 계속했다. 그리고 꿈속에서도 그리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무대에서 김연아는 228.56점이라는 '전무후무'한 점수로 진정한 얼음여왕에 등극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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